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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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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헌법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없는 게 있다. 이사의 자유다. 대한민국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민은 '강남' 진입은 꿈도 못 꾼다. '강남' 주민도 나름대로 고민이다. 집을 갖고 있자니 종합부동산세가 무섭고, 팔고 옮기자니 양도소득세가 무겁다. '세금폭탄'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옴짝달싹할 방법이 없다.

세금은 옛날부터 이사의 자유를 막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도시 발달이 늦은 동양에선 더했다. 백성이 한곳에 있어야 세금 거두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도 법으론 이사의 자유가 없다. 그러나 예외는 많다. 상하이(上海)는 100만 위안(약 1억2000만원)이 넘는 집을 사면 시민증을 준다. 쑤저우(蘇州)는 세금을 많이 내면, 베이징(北京)은 첨단기술직 등에게 취업 시민증을 준다. 돈이나 권력, 또는 학력이 높아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생기는 셈이다.

중세 농노(農奴)들이 이사의 자유를 얻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도시로 들어가 만 1년을 버티는 것이었다. '도시의 공기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독일 속담도 여기서 나왔다. 1155년 루이 7세가 로리 시에 내린 포고문이 첫 사례였다. "로리 교구에 만 1년을 거주한 사람은 누구든지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곳에서 살게 하겠노라." (F A 오그 '중세의 역사')

세금은 주거 형태도 바꾼다. 미국 뉴올리언스에는 낙타 등 모양의 집이 즐비하다. 19세기 말 루이지애나주는 입구에서 봤을 때 몇 층이냐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낙타 등 주택은 입구에서 봤을 때만 1층이고 뒤에서 보면 여러 층인 비실용적인 집이다. 이렇게 세금 신호에 따라 사람들이 (정책 의도와 달리) 반응하는 것을 '뉴올리언스 효과'라 한다. (팀 하포트 '경제학 콘서트')

'세금폭탄'을 만든 이들은 곧 세금이 무서워 집값이 안정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벌써 뉴올리언스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이 폭등하고, 이사 가는 집은 줄고 있다. 최근 통계청은 올 3분기 인구이동이 200만 명으로 2004년 3분기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밝혔다.

한 식자(識者)는 일찌감치 이런 세태를 비웃었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는 오로지 돈과 권력을 가졌을 때 누릴 수 있다. 돈과 권력이 없다면 거주 이전의 자유는 더욱 나쁜 거주지로 갈 자유이지 좋은 거주지로 갈 자유는 아닌 것이다."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