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이라크 파병 연장 왜 반대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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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가 최근 '자이툰' 부대의 주둔 규모를 변화된 여건에 맞게 감축하면서도 활동 기한은 연장한다는 이라크 파병 연장 방안을 결정했음에도 우리 사회 내에선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을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이라크 전쟁 자체가 미국의 일방주의와 비도덕성을 반영하는 것인 만큼 이에 계속 동참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이라크 내부의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미국조차 철군을 검토하는 마당에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둔 자이툰 부대가 주둔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셋째, 반대론자들은 우리 군이 쿠르드족 지역에 주둔함으로써 자칫 여타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난을 통해 개인적 가치나 세계관의 차이에 대해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파병 연장 반대론에 내재되어 있는 중대한 인식의 오류나 모순은 올바른 여론의 형성을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은 미국의 요청과 한.미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국제사회의 이라크 재건 노력에 대한 동참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이툰 부대는 단순히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군대가 아니다. 이라크 내의 민주적 정부 수립과 원활한 전후 재건을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1546호의 정신을 반영한 조치가 바로 자이툰 부대의 파병이었다. 또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거둔 성과들은 이라크 내의 불안정한 치안 상황과 열악한 현지 여건을 감안할 때 결코 폄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최대 파병국들도 철군을 검토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논리의 비약 내지 왜곡이다. 중간선거를 전후하여 미국 내에서 파병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즉각적인 전면 철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역시 일부 병력의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지만 여전히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이 이라크에 주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론에 이르면 필자로서는 '잘못된 전쟁'을 설파하던 그들의 이상주의적 국제관이 왜 갑자기 냉혹한 현실주의적 계산으로 전도됐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뿐 아니라 무슬림을 그렇게 단선적이고 속 좁은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그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제를 보다 솔직히 다루어 보자. 만약 애초에 이라크 파병을 미국이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파병 연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논란이 벌어졌을까. 필자는 최근의 논란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고질적 집착으로 자리 잡아온 일종의 탈미(脫美) 강박관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경제력과 위상을 지닌 국가로 성장하였다. 분명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는 한.미 동맹이 중요한 고려 요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단순한 동맹국의 요청에 대한 부응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이툰 부대의 주둔과 파병을 통해 우리는 국제사회의 요청에 당당히 부응하는 성장한 한국의 모습을 보였고, 동맹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주둔 지역과 규모를 우리 의지대로 관철하는 성숙된 외교력을 보였다.

현재 미국과 국제사회가 바라는 것은 병력의 규모보다 이라크 안정화라는 취지에 끝까지 부응하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자 신뢰성 있는 동맹의 모습이다. 언제까지 탈미의 강박관념에 빠져 자기 비하와 자학을 계속할 것인가. 철군이라는 상징적 단어 하나에 매달려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는 잘못을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