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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라 소멸’ 세계의 걱정거리 된 한국 저출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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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저출산 문제를 조명한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 사진 유튜브 캡처

한국 저출산 문제를 조명한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 사진 유튜브 캡처

NYT “유럽의 흑사병 때 버금가는 인구 감소 위험”

출산 막는 청년 불안 해소할 실질 행동이 시급해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추세가 지속한다면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절반가량 급감했던 지난 14세기 유럽보다 더 빠르게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은 소멸하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지금처럼 급격한 인구 감소가 향후 수십 년 동안 지속할 거라고 보진 않지만 한국 통계청의 인구 추계대로 2060년대 후반에 3500만 명 이하로 떨어지는 정도만으로도 한국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또 “한국 사례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저출산 문제가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우리(미국)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경고”라고 했다. 지난해 우리의 합계 출산율이 압도적인 세계 꼴찌(0.78)로 떨어지면서 점점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양상이다.

칼럼의 지적대로 한국의 저출산은 속도와 지속 기간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2002년 처음으로 초저출산 현상(합계출산율 1.3명 미만)이 시작된 이래 20년 넘게 단 한 번도 1.3을 회복하지 못하고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3분기 합계출산율 0.7로 또 한번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진 0.7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에 대응한다며 정부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쓴 예산이 무려 380조원에 달하지만, 출산 기피는 오히려 더 심화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다. 원인과 해법을 몰라서라기보다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탓이 크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3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 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만 봐도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는 저출산에 따라 인구 구조가 급속하게 고령화하면서 2050년께 0% 이하 성장율을 보일 확률이 68%에 달한다는 비관적 전망을 했다. 동시에 정책적 노력을 통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해법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가령 저출산의 핵심 원인이 청년층이 겪는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 불안인 만큼 경쟁 압력을 낮추기 위한 제대로 된 지원책을 내놓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높은 주택 가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혁을 동시에 한다면 출산율 상승을 견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부모와 법률혼 중심의 정상 가정을 전제로 하는 지원체계를 넘어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 중심의 지원체계로 나아갈 것을 권유했다. 이런 방식으로 출산율이 0.2만 올라도 2040년대에 잠재성장률은 0.1%포인트 높아진다고 한다.

지금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하루 빨리 지속가능한 구조개혁에 나서는 동시에 혼외자 차별 같은 고루한 인식을 바꿔야 나라가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