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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손실·피해 기금’ 출범, 한국도 기후위기 해결 책임 다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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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COP28 ‘기후정의’ 실현 첫발, 미국도 탈석탄동맹 가입

한국 CO2 배출 9위 기후 대응 60위, 커져 가는 책임론

국제사회가 기후정의 실현에 한 발짝 다가섰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개막한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회원국들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을 위한 기금 출범에 합의했다. 주최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독일이 각각 1억 달러를, 영국은 6000만 파운드, 미국·일본은 각각 2450만 달러와 10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유럽연합(EU)도 1억4500만 달러 기부를 공언했다.

‘손실·피해 기금’ 출범은 개발도상국이 꾸준히 제기해 온 기후정의 이슈가 처음 실행으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 각국이 기후 대응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건 기후 불평등 탓이 컸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해 온 선진국의 책임이 큰데, 개도국도 같은 잣대로 규제하다 보니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아울러 기반시설 등이 부족한 개도국은 홍수·폭우 등 기후위기 피해도 선진국보다 더욱 심각하다.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에 따르면 1750~2020년 동안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1조6965억t) 중 38.5%가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몫이었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둘을 합해도 5.5%밖에 되지 않는다. 개도국 입장에선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실컷 사용하다 이제 와 탄소 규제를 들이대는 강대국의 행동이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제 석탄 설비 용량이 세계 세 번째인 미국과 다른 6개 나라가 ‘탈석탄동맹(PPCA)’ 가입을 선언한 것 역시 고무적이다. 2017년 영국과 캐나다의 주도로 결성한 PPC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EU 국가들은 2030년까지, 나머지는 2050년까지 석탄 사용 중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 호주, 터키만 PPCA에 가입돼 있지 않다.

국제사회가 기후위기 해결에 여러 노력을 해나가고 있지만, 한국만 유독 뒤떨어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9위인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는 60위(2022년)에 불과하다. 저탄소를 호언했던 문재인 정부에선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취임 전 47.5%(2016년)에서 52.4%(2018년)로 오히려 늘었다.

한국의 기후 대응이 뒤처진 건 원전 폐기 정책으로 국가 에너지 전략이 오락가락한 탓이 크다. 원전은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될 만큼 기후 대응에 필수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지나치게 높은 석탄발전 비중을 줄여 가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공여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 개도국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정의 실현에 앞장서고, 높아진 국가 위상에 걸맞은 ‘손실·피해 기금’ 지원 방안도 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