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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정서가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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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31면

민감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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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한 해를 풍미한 유행어를 뽑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교열 기자들이 펴내는 잡지 『교문작자(咬文嚼字)』는 30여 개 단어로 온라인 투표를 시작했다. 하나하나에 2023년 중국의 사회상이 담겼다.

정서가치(情緖價値·칭쉬자즈)란 단어가 눈에 띈다. 뜻이 알쏭달쏭한데 다른 사람의 기분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가령 “어떤 연예인은 정서가치를 힘껏 끌어당긴다”는 문장에서 정서가치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감성지수(EQ)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반영됐다.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도 경제적 능력보다 하소연을 잘 받아주거나 마음의 위로가 되는 정서가치를 중시한다. 이런 말이 유행하는 건 불황 여파로 중국인의 삶이 팍팍해진 탓이 아닐까 한다.

‘특수부대여행(特種兵式旅游·터중빙스뤼유)’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특수부대원이 군사작전 펴듯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소 비용으로 가능한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 스타일이다. 주머니가 얇아진 대학생이 특전사 여행을 다녀오면 ‘특전사식 공부’가 기다린다.

최근 중국 젊은이의 체력이 부쩍 약해졌다는 뉴스에 ‘취피(脆皮·추이피) 대학생’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취피’는 후라이드 치킨의 바삭한 튀김옷을 말한다. 화장실에서 골절상을 입고, 재채기를 하다 디스크에 걸리고, 웃음을 참다 비강 동맥이 파열됐다는 등 웃지 못할 사고들이 SNS에 퍼지자 ‘튀김옷 대학생’ 현상을 우려하는 관영 매체 칼럼까지 등장했다.

쥐를 오리라 우긴 ‘지서위압(指鼠爲鴨·즈수웨이야)’은 요즘 경직된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사건은 지난 6월 1일 장시(江西)성의 장시기술학교 학생이 학생식당 급식에 나온 쥐머리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학교 측과 현지 정부는 조사 후 오리의 목으로 판정됐으며 해당 학생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진(秦) 2대 황제 호해(胡亥)를 농락하기 위해 환관 조고(趙高)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던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떠올린 네티즌은 ‘지서위압’이 된 세상을 개탄했다. 파문이 커지자 성(省) 정부가 개입해 오리라고 주장한 관계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책임을 진 말단 관료는 21세기판 조고가 됐고 당국의 권위는 웃음거리가 됐다. 쥐를 오리라 우기는 ‘웃픈’ 현실 속에서 중국인들은 ‘정서가치’에 목 말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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