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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포위된 한은, 7연속 기준금리 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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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은행이 30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로 유지했다. 지난 2·4·5·7·8·10월에 이은 7연속 동결로, 금통위원 6명 만장일치 결정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전 가능성은 잦아들었지만, 국내 공공요금 인상 등 누적된 비용 압력 탓에 내년 물가가 예상보다 덜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주된 근거다. 내년 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라는 단기 부양책을 쓸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기 위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통화정책방향결정문에는 “물가경로가 당초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종전의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을 ‘충분히 장기간’으로 바꿨다. 이 총재는 “시장에서 상당 기간을 6개월 정도로 생각한다는데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은 6개월보다 더 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표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하를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제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성장세 둔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 발표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1%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하반기 수출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올해(1.4%)보다는 나아지겠지만, 고금리 영향으로 소비와 건설 투자 등 내수 회복 모멘텀이 예상보다 약화할 수 있다고 봐서다. 지난 2월 전망(2.4%) 이후 4번 연속 낮춘 것이어서 이러다 2년 연속 1%대 성장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은 조사국도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심해지면서 원자재가격이 상승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1.9%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그럼에도 이 총재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가능성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2%대 성장이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도 하는데 전 세계 성장률로 보면 그렇지 않다. 성장률이 낮아서 부양을 하고, 금리도 낮추는 게 바람직하냐고 물으면 제 대답은 ‘아니다’”라며 “섣불리 부양하려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도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9월(3.7%)보다 소폭 높아졌다. 한은은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3.6%·2.6%로 지난 8월보다 각각 0.1%포인트·0.2%포인트 높여 잡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하지만 시장에선 미국의 금리 인하 시그널을 확인한 후 내년 하반기쯤 한국도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거란 관측이 여전히 우세하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사상 최대 폭(2%포인트)을 기록하고 있는 한미 금리차로 인해 미국 금리인하 시점이 국내 금리인하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미국의 성장과 물가 상승 속도가 4분기 들어 둔화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시장은 미국의 긴축 종료 전망에 힘을 더 싣고 있다. Fed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표한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에서 “경제활동이 전반적으로 지난 보고서 이후 둔화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12개 연방준비은행(연은)의 관할 지역 중 6곳에서 경기 하락세가 확인됐다. 다른 2곳의 경기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다소 하락했다.

긴축 중단의 주된 변수인 고용에 대해 Fed는 “수요가 계속 완화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에서 고용 수요가 이전과 비슷하거나 완만하게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임금 상승세도 꺾였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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