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캐스팅보터들을 위한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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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용산도 싫고, 개딸도 싫고.’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거대 양당이 혐오 정치를 하니, 유권자들은 두 당 모두를 혐오하게 된 것이다. 제3당이야 선거철의 단골 메뉴이니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이번엔 신당 논의가 너무나 많다.

일단 이준석 신당, 금태섭의 ‘새로운 선택’, 양향자의 ‘한국의 희망’, 그리고 정의당 일각의 ‘제3의 권력’이 있다. 정의당 주류의 ‘선거연합 정당’이 있는가 하면 ‘조국 신당’, 용혜인의 ‘개혁연합신당’ 등 친민주당 계열 위성정당 건설의 시도도 있다. 친민주당 계열의 신당들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 체제 안에서 의석을 배분받기 위해 만드는 기획 정당에 가깝다. 반면 이준석, 금태섭, 양향자, 제3의 권력의 신당 논의는 그래도 기존의 정치 질서를 전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거대 양당 실망에 신당 논의 활발
아직 정치적 목적 명확지 않지만
과거 우려먹는 퇴행과 결별 주목
극단 견제하는 의회 내 세력 기대

사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이미 정치적 정당성을 잃었다. ‘산업화’든 ‘민주화’든 혹은 ‘노동해방’이든 자신들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말해주던 ‘거대서사’를 잃어버리니, 그저 상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만으로 지지율을 유지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온 신당 논의는 거대양당의 행태에 질려버린 중도층이 하나의 정치적 계층으로 고착화한 현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문제는 양당의 혐오 정치에 진저리를 치는 이들마저 양당을 고루 혐오하는 ‘이중혐오’의 덫에 갇히기 쉽다는 것이다.

이 이중혐오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부터 명확히 해야 하나, 아직 어느 세력도 거기엔 이르지 못한 듯하다. 가령 금태섭 의원의 ‘새로운 선택’은 아직 ‘상식에 기초한 정치를 복원한다’는 것 이상의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의 의견 그룹 ‘세 번째 권력’은 “양당을 지지하지 않는 제 3시민들과 새로운 다수파 연합을 구성해 집권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성장 국가에서 성숙 사회로’라는 그들의 슬로건은 아직 추상적이어서 임팩트가 떨어진다.

이준석의 신당은 다분히 협상을 위한 카드에 가까운지라 아직 성격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국민의힘을 대체할 혁신보수정당을 지향할 수도 있고, 그리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양당 기득권 구조에 균열을 내는 제3지대 정당을 지향할 수도 있다. 그의 신당이 어느 길을 걸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독자적인 신당으로 갈까, 제3지대에 합류할까, 아니면 어느 시점에 국민의힘으로 회군할까? 본인도 아직 모르는 듯하다. 아직 부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건물부터 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들 각각이 ‘모든’은 아니더라도 ‘많은’ 유권자들의 심경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신당은 국민의힘, ‘새로운 선택’과 ‘한국의 희망’은 민주당, ‘세 번째 권력’은 정의당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 아닌가.

이것이 신당의 출범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어느 세력도 아직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을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 충분조건이란 젊은 세대를 위해 ‘산업화’니, ‘민주화’니, ‘노동해방’ 등 이미 낡아 버린 이념들을 대체할 대안 서사를 쓰는 것이다. 산업화는 50~60년 전, 광주항쟁은 40년 전, 노동자 대투쟁은 30년 전의 일. 어차피 젊은 세대에게는 학교에서 시험문제로나 접하는 아득한 과거의 일들이다. 그러니 아직도 그걸 우려먹는 기존 정당들이 회고적·퇴행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신당은 제3의 ‘지대’보다는 ‘미래’에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총선을 몇 달 앞둔 상황에서 한가하게 대안적 서사를 쓸 여유는 없을 게다. 그러니 그건 장기적 과제로 남겨두고 당장은 이번 총선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부터 제시해야 할 게다.

사실 이 나라엔 ‘캐스팅보터’를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민주당의 폭주에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대응하고, 정부·여당의 입법은 민주당에서 부결로 대응한다. 정치가 진영대결로 치닫다 보니 이쪽이나 저쪽이나 아무 일도 못 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 이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만 하는 정치)를 깰 수 있는 것은 진영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캐스팅보터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과거엔 정의당이 부분적으로 그 역할(‘데스노트’)을 했지만, 조국 사태 이후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양당의 상황을 보건대 극단적인 진영대립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게다. 이런 상황에서 먹통에 빠진 정치과정을 다시 작동시키려면 양측의 극단을 견제하고 의회의 정치적 결정이 이성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게 이끌어줄 세력이 있어야 한다.

진영 싸움을 E스포츠로 즐기는 나라에서 ‘정치개혁’이나 ‘선거제도 개혁’씩이나 바라는 것은 사치이리라. 그저 바라건대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의석을 갖춘 정당이 하나쯤은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사치일까?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