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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03) 가을 타작(打作) 다한 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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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가을 타작(打作) 다한 후에
이정보(1693∼1766)

가을 타작 다한 후에 동내(洞內) 모아 강신(講信)할 제
김풍헌(金風憲)의 메더지와 박권농(朴勸農)의 되롱춤이로다
좌상(座上)에 이존위(李尊位)는 박장대소하더라
-해동가요

농사가 하늘이었다

189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3대에 걸쳐 기록된 전남 구례 유씨(柳氏) 가(家)의 농가 일기를 보면 천수답에 의지하던 농경시대의 농사짓기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잘 알 수가 있다. 가뭄과 장마가 해를 바꿔가며 번갈아 왔으며, 물싸움과 기우제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힘들여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게 가을 추수는 축제였다.

풍헌이나 권농, 존위는 정식 벼슬 직함이 아니다. 풍헌은 면(面)이나 리(里)의 일을 맡아보던 명예직이었으며, 권농은 방(坊)이나 면에서 농사를 독려하던 사람이었다. 존위는 마을의 어른을 이름이다. 농민들에게 친숙한 호칭으로 수확의 즐거움을 그리고 있다. 이때만은 농민들의 마음은 부자였으며 풍요로웠다.

가을 타작이 끝나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향약의 계모임을 벌였다. 김풍헌은 메더지라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박권농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도롱이 춤을 춘다. 이 모양을 보고 높은 자리에 앉은 이씨 어른이 손뼉을 치며 웃더라는 것이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