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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텃밭 뺏는 현대차, 동남아서 쾌속 질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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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로렌스 웡 싱가포르 부총리(왼쪽)가 지난 21일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과 로렌스 웡 싱가포르 부총리(왼쪽)가 지난 21일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일본 브랜드의 아성이었던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쾌속 질주하고 있다. 현지에 생산거점을 세우고, 전략 차종을 투입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2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아세안 시장에서 역대 최고 판매를 기록할 전망이다. 주요 6개국 가운데 베트남에서 올 1~10월 4만973대를 팔아 토요타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가장 큰 시장인 인도네시아에선 같은 기간 2만9633대를 팔아 7위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내 현대차 판매 순위는 2021년 13위에서 지난해 8위로 수직 상승했다.

이에 따라 아세안에서 지난해 21만834대를 팔아 ‘20만 고지’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현대차도 최고 기록을 세울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2017년 판매 대수가 8만4290대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5년 새 세 배 가까이로 증가한 것이다.

2019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 회장(왼쪽)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2019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정 회장(왼쪽)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고속 성장에 대해 현지화 전략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아세안 주요국에서 올해 1~10월 현대차 차종별 판매량을 보면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종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아세안 주요국에 인기가 높은 차종은 스타게이저(2만81대), 크레타(1만5545대), 엑센트(1만2940대), i10(6117대), 아이오닉5(6090대), 싼타페(5171대) 순이다. 이 중 스타게이저·크레타·아이오닉5·싼타페 등 4개 차종이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된다. 베트남에서도 2017년 현지 공장을 건설한 후 2019년부터 3년 연속으로 토요타를 제치고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공장이 생산하는 아이오닉5는 현지에서 최초로 생산하는 전기차이기도 하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준공식을 찾아 “아이오닉5는 인도네시아 전기차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흥 전기차 시장을 노리는 기업과 전기차 생산 허브를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아세안 시장은 그동안 ‘일본의 텃밭’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일본 기업 약 1만5000곳이 아세안 일대에 현지 법인이나 자회사, 공장 등을 두고 있다.

최근엔 사정이 달라졌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주요 기업들이 현지 투자를 늘리면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인 BYD(비야디)가 태국에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여기에 더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도 생산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 1위 배터리 기업 CATL이 60억 달러(약 7조75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1일 싱가포르에 연 3만 대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생산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준공했다. 이곳에 기존 대량생산 방식의 핵심인 컨베이어벨트를 없애고, 소규모 작업장에서 근로자와 조립 로봇이 함께 맞춤형 차량을 생산한다.

이처럼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신기술 개발까지 모두 현지에서 이뤄지는 체계가 정착되면 해당 국가를 거점으로 동남아 국가들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현지화율 40% 이상인 완성차를 상호 수출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 자동차 시장이 쑥쑥 성장 중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아세안 주요 6개국의 자동차 수요는 올해 313만 대, 2025년 405만 대, 2033년 453만 대 등 지속해서 상승세가 전망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치색이 옅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해온 아세안을 거점으로 삼으려는 기업들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동맹국 공급망 연대) 경쟁이 불붙었다”며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데다 신흥 시장이라 성장률이 높고 신성장 동력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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