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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권력 남용 정치 안 바꾸면 586정치인들 범죄 계속 나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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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희정·이재명 수행했던 비서들의 폭로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 22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7년간 수행비서였던 문상철씨가 책 『몰락의 시간』을 냈다. 책은 안 전 지사가 의전 카르텔과 팬덤에 포획돼 권력정치에 오염된 끝에 여비서 김지은씨 성폭행 혐의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몰락 과정을 생생히 담았다. 문씨는 김씨를 도운 첫 조력자이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공익신고한 전 경기도 공무원 조명현씨도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를 냈다. 보름 간격으로 민주당 586 지자체장 보스의 부패 의혹을 폭로한 비서 출신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의리’ ‘진영’ 대신 ‘팩트’ ‘공정’을 중시한다는 거였다. 문씨는 1983년생, 조씨는 1978년생. 둘 다 40대다. 정치 성향을 물으니 조씨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라 했고, 문씨는 “진보 성향이지만, 권력의 잘못을 따지는 데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문상철·조명현씨 잇따라 책 발간
문 “안희정 공? 성범죄 곱하면 0”
조 “민주당, 책 키워줄까 입 닫아”
“팩트가 잣대되는 정치 곧 올 것”

현금 든 상자 막으니 선배들 질책

안희정 전 지사 비서였던 문상철씨가 저서 『몰락의 시간(메디치미디어)』을 들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알아야할 것을 기록하려고 담담하게 책을 썼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안희정 전 지사 비서였던 문상철씨가 저서 『몰락의 시간(메디치미디어)』을 들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누군가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알아야할 것을 기록하려고 담담하게 책을 썼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28일 문상철씨를 만났다. 첫 질문으로 ‘책이 출간된 뒤 안 전 지사나 민주당 반응’을 물었다. “반응이 없다. 다만 3년간 상무로 재직한 기업에서 사직을 권했다. 책에 부담을 느끼는 입장을 이해해 27일 사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안희정’으로 상징되는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권력이란 칼의 무게를 모르고 마구 휘둘러 국민을 베는 현실을 고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안희정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했다.

안 전 지사가 당신을 비롯한 보좌진에게 ‘가문’이란 말을 자주 했다고 썼다.
“가족처럼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고 위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가부장제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단어다. 안희정이라는 아버지를 위해 자식뻘 참모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거다. 정치에 ‘가족’이 어디 있나. ‘가족이니 잘못 있어도 가려줘야 한다’는 강요일뿐이다. 공무에선 ‘가족’ 대신 법규와 제도가 잣대가 되어야 한다.”
안 전 지사가 역술인이나 해외 로비스트들과 자주 만났다고 했는데, 로비스트들과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내 기억 선에선 없었다. 물론 몰랐을 수 있다. 다만 로비스트들은 작은 문제 해결 대신 향후 안 전 지사에게 더 큰 요구를 하려고 준비를 꾸준히 한 것으로 본다.”
모 기업인이 안 전 지사 차에 돈다발이 든 과일 상자를 넣으려고 한 걸 당신이 막자 선배 보좌진들이 ‘네가 뭔데 그런 짓 하나’고 질책했다고 썼다. 그들은 현금 상자를 받았다는 얘기 아닌가?
“정치인 캠프는 대개 회계 처리가 쉽지 않은 비용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안다. 특히 선거자금은 자금을 담당하는 극히 일부 직원들 외엔 절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내가 아는 부분이 많지 않다.”
조명현

조명현

안 전 지사를 비롯해 박원순·오거돈 등 유달리 민주당에 성범죄 파동이 많다.
“보수 진영에도 그런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많이 있었다. 좌우 막론하고 정치인이 권력을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느냐가 판단의 잣대다. 다만 성범죄 사건이 터지면 어느 당보다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안 지사에게 성폭행당했다”는 김지은씨 말을 듣고 그를 돕는 편에 섰다. 안 전 지사를 보좌한 입장에서 고민도 있었을 듯한데.
“안 전 지사와 미래를 함께 하겠다는 생각만 하던 나로선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러나 김씨의 고통을 생각하면 조금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

책에 따르면 안 전 지사의 피해자는 김지은씨뿐만 아니다. “김지은씨가 JTBC에 나와 성폭행당한 사실을 밝히는 순간 나와 TV를 같이 보던 후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안 전 지사의) 또 다른 피해자로 추측됐다. ‘(안) 지사님 믿지 말라.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다’고 내게 말했던 여선배도 안 전 지사의 피해자임이 녹음파일로 드러났다. 그 밖에도 (피해자가) 몇 명 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김지은씨 사건이 터지자 안 전 지사 편을 들었다.”

“‘노무현처럼 사라졌으면’ 하더라”

안 전 지사 성 추문이 터진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주변을 걱정해 자살해 말끔히 정리돼 주변 사람들이 피해 안 봤다”고 말한 국회의원이 있었다고 썼는데.
“김지은씨를 도와달라고 호소하려고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찾아갔는데, 한 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 충격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아픔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너무나 쉽게 거론한 점, 또 하나는 안 전 지사가 사라져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였다. 난 피해자를 도왔지만, 안 전 지사의 안위도 걱정했다. 그러나 정작 측근이란 정치인들은 궁지를 모면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정치의 비열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안 전 지사 부인이 당신 가족에게 자녀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는데.
“안 전 지사가 재판받을 당시, 김지은씨 측 증인의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안 전 지사 부인이 내 아내에게 ‘잘 생각하라’는 문자와 함께 세 살배기 딸의 안부를 물은 건 엄청난 압박으로 느껴졌다. 이후 부인과 딸은 처가로 한참 피신해 있어야 했다.”
안 전 지사가 임기 초반 전자결재 시스템을 만드는 등 공도 있었다고 썼는데.
“맞다. 그러나 숫자가 아무리 커도 0을 곱하면 0 아닌가. 성과를 냈더라도 부하의 인권을 짓밟았다면 공을 평가할 수 없다. 책이 220쪽쯤 되는데, 원래는 안 전 지사의 또 다른 문제점들을 다룬 70쪽 분량이 더 있었지만 줄여서 낸 거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댓글이 압권”

조명현씨와도 인터뷰했다. 2021년 3월~10월 경기도 7급 공무원으로 일한 조씨는 ‘사모님 팀’에 배치돼 샌드위치·샴푸 등 이재명 지사(당시) 부부의 생활용품을 배달하고 법인카드로 계산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 지사 옷을 세탁소에 맡겼고 속옷을 빨기도 했다. 그는 “공식적으론 비서지만 실제론 하인·공노비 같았다”고 했다.

책이 나온 뒤 서점가와 민주당의 반응은.
“지난주 교보문고에서 정치·사회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고 들었다. 반면 민주당의 반응은 전무하다. 판매 금지 가처분은커녕 논평 한마디 없이 ‘나 몰라라’ 전략으로 가더라. 반응하면 책만 주목받게 되니 두려운 듯하다. 그래서인지 메신저인 나의 신상만 공격하더라. 댓글을 보면 내용이 똑같다. 누군가 내린 지침을 일제히 따라 하는 모양새다. ‘조명현은 김은혜 캠프에서 운동했다’ ‘7만 8000원짜리 사건일 뿐’ ‘이재명은 불기소 처분돼 무죄’란 식이다. ‘관상이 안 좋다’는 공격도 있다. ‘별것도 아닌 걸 갖고 청렴한 이재명을 깎아내린다’는 댓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법인카드가 사적 용도로 쓰인 걸 몰랐다고 주장하는데.
“말이 안 된다. 이 대표 측근이자 내 상관이었던 배 모(5급 공무원)씨가 내게 ‘지사님이 야채 샌드위치 좋아하니 야채를 추가해 가져오라’는 식의 피드백을 끊임없이 줬다. 이 대표 취향이니 본인 얘기를 듣지 않고선 지시할 수 없는 내용 아닌가. 또 그 비용은 도청 내 여러 부서에서 예산을 끌어다 충당했는데, 부서장들이 도지사 승인 없이 결재했을 리 만무하다. 그랬다면 중징계에 연금까지 박탈된다. 이 지사가 성남시청에서 데려온 간부가 배씨 얘기를 듣고 (예산을 끌어다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근황은.
“수원지검이 경기도청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는데 기각당했다. 이에 항의해 수원지법 앞에서 21일부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개딸’인 듯한 2명이 매일 내 근처에서 전화 통화하는 척하며 욕을 하고 나를 노려보더라.”
당신이 보는 ‘법카 사건’의 의미는.
“나라를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다. 국민도 정치인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진영 따지지 말고 팩트로 판단해야 한다. 나는 이 대표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날까지 싸우는 게 목표다. 그 밖의 일은 머릿속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