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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석이 부모 잘못" 이 말까지…혁신위 리스크 된 '인요한 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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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출범 한 달여 만에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구설수가 잇따르며 ‘영(令)이 안 서는 혁신위’를 자초했다는 평가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뉴시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뉴시스

①인요한의 잇따른 설화

혁신위가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으로는 인 위원장의 잦은 설화가 꼽힌다. ‘푸른 눈의 한국인’인 그가 처음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등장해 여의도 문법과 다른 말을 쏟아냈을 때만 해도 “히딩크 같다”(성일종 의원)는 극찬과 기대감이 분출됐다. 하지만 최근엔 “이젠 인요한의 입이 오히려 리스크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준석 전 대표를 ‘준석이’이라고 지칭하고, 이 전 대표의 부모를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 26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국민의힘 청년 및 당원 트레이닝 행사에서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며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이튿날 당장 당내에선 “선을 넘은 것”(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이란 평가가 나왔다. 38세 이 전 대표가 64세인 인 위원장의 아들뻘이긴 해도 집권 여당의 대표를 지냈고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이 넘은 이 전 대표에게 “부모를 언급한 건 부적절하다”는 게 중론이다.

당장 이 전 대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는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나이 사십 먹어서 대표를 지냈던 정치인한테 ‘준석이’라고 당 행사 가서 지칭한다는 자체가 어디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다”며 “소위 젊은 사람들이 이걸 ‘패드립’(패륜적 말장난)이라 그러는데 패드립이 혁신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치 12년 하면서 부모 끌어들여서 남 욕하는 건 본 적이 없다”며 “혁신위 활동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징계 취소를 ‘1호 혁신안’에 담고, 틈날 때마다 “이 전 대표와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그동안 이 전 대표에게 공을 들여왔지만 이번 일로 진정성은 빛이 바랬다는 평가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인 위원장은 이미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영남 의원을 겨냥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라” 했다가 논란이 되자 “농담”이라고 하는 등 기자에 직접 발언을 한 뒤 기사화되면 부인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특히 험지 출마론으로 김기현 대표와 신경전을 벌이던 지난 15일 “(대통령 측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소신껏 끝까지 해달라’는 신호가 왔다”고 주장한 건 혁신위 행보에 스스로 제동을 건 대표적 실언으로 꼽힌다. ‘윤심(尹心)이 내게 있다’는 취지였지만 “대통령을 당무에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김기현 대표)는 당내 반발을 부른 까닭이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인 위원장의 발언 이튿날인 지난 16일 “그런(신호를 보내는) 것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 위원장의 악수(惡手)로 혁신위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했다.

②설익은 타이밍

혁신안에 힘이 실리지 않는 건 “혁신위 발표가 정치(精緻)하지 않기 때문”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 혁신위 발표 중 가장 파격적이었던 지난 3일의 ‘지도부·중진·친윤 험지 출마’ 요구가 대표적이다. 인 위원장과 혁신위가 3주 넘게 권고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외려 김기현 대표는 보란 듯이 지난 25일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에서 의정 보고회를 열었고,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지지자 4200여명을 버스 92대에 태워 세 과시를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혁신위가 정치 생명을 건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명분과 시간을 주지 않으니, 먹히기 힘든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간 여권에선 “우격다짐으로 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인 위원장은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13일), “윷놀이에서 빠꾸도(빽도)는 없다”(14일)는 식의 강경 발언으로 일관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5일 울산을 찾아 의정보고회를 개최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5일 울산을 찾아 의정보고회를 개최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혁신위의 설익은 제안으로 여권의 총선 전략에 김을 빼놨다”는 말도 나온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당내 책임 있는 인사들이 총선에 맞춰 결단을 내릴 계획이 있었는데, 인 위원장이 먼저 카드를 꺼내 밀어붙이며 “당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갖추려던 지도부와 친윤의 스타일을 구기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③내부 교통정리 없이 분란

혁신위원 구성도 신선함만 강조하다 분란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온다. 인 위원장이 인선한 12명 혁신위원은 성별로는 여성이 7명, 세대별론 20~40대가 8명으로 ‘여성’과 ‘청년’이 인선 키워드의 골자였다. 당적이 있는 사람은 절반이었고, 나머지 6명은 대부분 교수·의사 등 엘리트 외부 전문가였다.

‘인선이 국민 눈높이에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인 위원장은 “일단 그건 나한테 좀 맡겨보쇼!”라고 큰소리쳤지만, 임기(내달 26일까지)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연거푸 조기 해체설이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정치 현실을 잘 아는 김경진 위원 등 정치인 출신과 박소연·이젬마·임장미 등 비(非) 정치인 출신 위원 간 의견이 충돌하며 갈등이 커진 게 문제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내부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로 분출시킨 것도 문제였다. 내부 회의 발언을 언론에 옮기며 서로 손가락질하는 수순까지 접어들었다. 갈등이 계속되면서 혁신위는 27일 밤에 예정됐던 화상회의를 취소했다. 인 위원장도 이날 오전 예정됐던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의 면담을 40분 전에 취소했다. 인 위원장 측은 “김동명 위원장과의 만남은 취소가 아니라 연기한 것”이라며 “조만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늘(27일) 당무 감사 결과가 발표되고 내달 초·중순이면 공천관리위가 출범해 총선 체제로 접어든다”며 “혁신위 동력이 다시 살아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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