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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만기 8조…‘홍콩 ELS’ 폭탄 터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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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이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원금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6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ELS 상품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KB국민은행(4조7726억원)이 가장 많고, NH농협(1조4833억원)·신한(1조3766억원)·하나(7526억원)·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계약 시점보다 일정 수준 떨어지지 않는다면, 약속한 수익을 주는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 이하로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을 잃는다. ELS 기초자산은 2~3개의 주가지수를 묶어서 쓰는데, 특히 홍콩H지수와 연계한 상품이 많다.

ELS 만기가 통상 3년임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상품의 계약 시점 홍콩H지수는 2021년 상반기다. 당시 홍콩H지수는 1만340~1만2229에서 등락을 반복했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인 6000선에 머물고 있다. 지수 반등 없이는 대규모 원금 손실이 현실화할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ELS 상품을 판 KB국민은행은 원금 손실이 상대적으로 큰 ‘녹인형(knock-in)’을 주로 팔아 우려를 키운다. ELS는 크게 녹인형과 ‘노녹인형(no knock-in)’ 상품으로 나뉜다. 녹인형은 계약 기간 중 기초자산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50% 이하(녹인)로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이에 연동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품이다. 원금을 회복하려면 만기 때까지 지수가 가입 시보다 통상 70% 이상으로 회복해야 한다. 노녹인형은 계약 기간 지수가 얼마나 내려가는지 상관없이, 만기 때 지수가 가입 시보다 65% 수준 이상이면 원금과 약정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KB국민이 판매한 ELS 상품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 대부분에서 녹인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녹인 상품이라도 홍콩H지수가 이미 2021년 지수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만큼, 내년까지 지수 반등 없이는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원금 손실 규모는 상품 종류와 가입 및 만기 시 지수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 지수가 그대로 유지하면 대략 40~50%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하나은행에서 판매한 ELS 상품 중 최근 만기가 도래한 181억원에서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약 83억원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손실률만 45.9%다.

ELS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금융사의 ELS 상품 불완전 판매 가능성 점검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에 대해 지난 2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현장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가입 당시 고객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사전에 충분히 고지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기 진행하는 정기 검사에서 ELS 불완전 판매 부문을 점검할 계획이다. 신한·우리·NH농협 다른 은행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서면 조사를 받고 있다. 증권사 중에서는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 5~6곳이 조사 대상이다. 조사 결과 불완전 판매가 발견되면, 라임·옵티머스·DLF(파생결합펀드) 같은 펀드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ELS 고객 상당수가 파생 상품을 잘 모르는 노년층이란 점이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키우는 부분이다.

ELS는 이미 수년 동안 은행이 문제없이 팔아온 상품인 만큼 지금 와서 불완전 판매로 제재하기엔 무리란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펀드 고객의 피해와 손실은 구별해야 하는데, 라임·옵티머스처럼 펀드 운용을 제대로 하지 않아 돈을 잃었다면 이를 피해라고 볼 수 있지만, ELS처럼 정상적으로 판매하고 운영했다면 손실을 본 것이지 피해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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