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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엔 빗장, 예산은 쥐꼬리…허울좋은 ‘디지털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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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24일 정부 모바일신분증 웹사이트와 앱 모두 장애를 일으켜 한동안 접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서비스는 6시간40분 만에 복구됐다. [뉴스1]

지난 24일 정부 모바일신분증 웹사이트와 앱 모두 장애를 일으켜 한동안 접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서비스는 6시간40분 만에 복구됐다. [뉴스1]

최근 일주일간 정부 행정망이 네 차례나 장애를 일으키자,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의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대기업 참여 제한을 비롯해 예산 배정, 저가 발주 등 공공SW 사업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IT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3년 도입된 공공SW 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토대로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은 지난 6월 이 방안을 공개하고 사업 규모가 1000억원 이상이면 대기업 참여를 허용할 계획이었지만, 최근엔 기준 금액을 더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 일주일간 행정망 4종에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친 영향이다.

행정망 오류가 잇따라 발생했지만 대국민 안내도, 원인 분석도 지체되는 등 정부 대처가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한국의 디지털정부(전자정부 서비스) 수출액은 약 40억 달러(약 5조2000억원). 지난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디지털정부 평가에서 종합 1위에 오르는 등 정부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기본에 소홀해 서비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장애가 발생했을 당시 정부는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며 카카오를 압박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중소·중견 시스템통합(SI)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대기업의 공공SW 사업 입찰을 제한한 지 올해로 11년째다. 당초 취지와 달리 이 제도가 오히려 기술 개발 경쟁을 막고 공공사업 수주만으로 생존하는 좀비 기업을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가 안보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신기술 분야는 예외적으로 대기업 참여가 가능하지만 컨소시엄 구성상 절반 이상을 중소 기업에 할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부가 쪼개기 발주를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SW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 SI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100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해 대기업 참여를 검토한다고 하지만 그 정도 사업은 1년에 한두 건에 불과하다”며 “공공SW 사업은 국민 편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 규모가 아닌 기술로 평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현재 공공SW 사업 입찰에서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기술로는 큰 차별화가 어렵다 보니 사실상 입찰 가격이 당락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적정 대가 이하의 입찰 경쟁이 결국 품질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고품질을 요구할 수 없는 수준의 가격 구조”라며 “공공SW 사업의 이익률이 3% 수준에 불과한데 고급 인력을 투입하거나 품질을 높이려면 적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현실화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내년도 전자정부 관련 예산은 크게 줄었다. 행정안전부의 디지털 정부 혁신 관련 예산 중 전자정부 지원 부문은 올해 493억원에서 내년 126억원으로 74% 삭감됐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기술은 발전하고 시스템은 더 복잡해지는데 정부와 공공기관은 발주하고 계약하는 역할만 집중하고 문제를 진단할 능력이 없다”며 “정부 내 시스템 운용 기관이 종합적인 관리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공무원 역량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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