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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수익성 균형, 보험사 퇴직연금 1년 새 18조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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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12면

퇴직연금 시장 지각 변동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2년 평균 80.9세에서 2021년 평균 83.6세로 가파르게 올랐다. 하지만 비슷한 기간 합계출산율은 1.19명(2013년)에서 0.78명(2022년)으로 하락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예상보다 더 빨리 바닥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퇴직연금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 이유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그동안 가입자 대부분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퇴직연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 올해 7월부터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를 의무화했다.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퇴직연금 사업자가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도록 한 제도다.

생보사 적립금 삼성·교보·미래 1~3위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속한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급여형(DB) ▶회사가 연간 임금 총액의 일정 비율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근로자가 이직이나 퇴직으로 받은 퇴직급여를 보관·운용하다가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세 종류다. 따라서 셋 중 DC형과 개인 IRP가 디폴트옵션 대상이다. 디폴트옵션 도입과 함께 올해 퇴직연금 시장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가지 변화는 보험사의 약진이다. 국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9년 22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335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연평균 15.3%가 증가했다. 그런데 보험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3분기 77조6177억원에서 올해 3분기 95조7508억원으로 23.4%(18조1331억원) 증가할 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45조2143억원)과 교보생명(11조759억원), 미래에셋생명(6조1770억원)이 1~3위인 가운데 한화생명(5조5147억원, 5위)과 푸본현대생명(1조3958억원, 8위)도 상위권에 올랐다. 손해보험사 중엔 삼성화재(5조7873억원, 4위) 외에도 KB손해보험(3조5613억원, 6위)과 롯데손해보험(1조9537억원, 7위)이 많은 적립금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해상(1조3618억원, 9위)과 DB손해보험(1조3195억원, 10위) 등이 이들을 추격 중이다. 사실 과거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험사는 은행이나 증권사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가입자는 은행을, 수익성을 중시하는 가입자는 증권사를 각각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같던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험사가 주목을 받고 약진 중인 배경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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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업계는 이를 ‘호황기가 빠르게 불황기로 넘어간 시기’에 어필되는 안정성과 수익성 사이의 ‘균형감’ 때문으로 풀이한다. 예컨대 가입자가 가장 많은 DB형 원리금보장상품만 봐도 올해 3분기 보험사 수익률은 평균 3.88%로 정확히 증권사(4.21%)와 은행(3.52%)의 중간 지점에 있다. 가입자 입장에선 보험사 상품이 은행 상품 못잖게 안정적이면서 수익성이 좋고, 증권사 상품 못잖게 수익성도 있으면서 안정성은 뛰어나다고 볼 만하다는 얘기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보험사는 고객의 안전한 장래를 우선시하는 업권 특성상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에 주로 투자하다보니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이 꾸준하게 유지된다”며 “장세가 좋을 때는 위험자산에 많이 투자하는 게 수익률이 높을 수 있지만 불황이 오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의 경우도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이 목표인 만큼 사업자가 불황기에도 위험자산에 투자하다가 외려 손실이 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말 기준 전체 사업자의 디폴트옵션 상품 296개 중 182개의 지난 3개월 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 그중에서도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일수록 수익률이 부진했다. 반면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보험사의 디폴트옵션 상품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동양생명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이율보증형 1.03%, 삼성생명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원리금보장상품 1.01%, IBK연금보험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이율보증형 1.00%, 한화생명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이율보증형 0.99% 등). 올해 3분기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생명보험사가 1336억원, 손해보험사가 667억원이다.

보험사는 이 같은 특유의 안정성에 더해 수익성도 잡고 있다. 올해 3분기 보험 업계의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 평균 수익률은 DB형과 DC형, 개인 IRP 모두 3%대를 기록했다. DB형의 경우 KB손해보험(4.58%), 푸본현대생명과 동양생명(이상 4.48%), 미래에셋생명과 흥국생명(이상 4.46%), 교보생명(4.25%), IBK연금보험(4.17%) 등은 4%대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 기간 이들이 투자한 채권 금리가 오른 등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3년 이상 예금으로 구성되는 원리금보장상품을 보험사는 자사 상품으로 편입할 수 있어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비(非)보험 업권에선 자사 상품 편입이 불가능해 수수료가 생긴다”며 “같은 조건이면 구조적으로 보험사 수익률이 높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상품 라인업 늘려 가입자 선택권 강화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외에 퇴직연금 시장 확대를 위해 적극 대응 중인 것도 보험사 약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2021년 39조2619억원에서 지난해 44조6802억원으로 1년 사이 5조4183억원 증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킨 삼성생명은 올해 DC형과 개인 IRP 가입자들이 2차전지와 헬스케어 등 다양한 섹터의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해 호응을 얻고 있다. ETF는 접근이 쉬운 펀드 투자의 장점과 장중 매매가 가능한 주식 투자의 장점을 동시에 갖췄다. 한세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노후 자금인 퇴직연금에선 장기 투자와 분산 투자, 주기적 점검이 중요하다”며 “ETF처럼 특정 지수의 수익률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를 활용하면 적극적인 분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생명은 또 퇴직연금 전담 인력 약 110명으로 구성된 조직을 구성해 가입자들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국 34곳의 삼성생명 고객플라자에선 퇴직연금 대면 상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내가 가입한 상품의 운용 현황 등을 오프라인 창구에서 간편하게 점검할 수 있다. 교보생명 역시 퇴직연금 전담 조직을 만들고 맞춤형 컨설팅으로 대응 중이다. 교보생명 퇴직연금컨설팅센터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절세 전략 소개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안내 등의 콘텐트를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가입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퇴직연금 자산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호응을 얻고 있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보험계리사·국제재무분석사(CFA)·재무위험관리사(FRM)·공인노무사 등의 전문 자격증 보유자들이 퇴직연금 시장 분석과 대응에 힘쓰고 있다”며 “장기 가입자에 대한 할인 체계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푸본현대생명도 퇴직연금 가입자를 위한 전용 상품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이를 통해 주기적으로 상품·수익률 등을 안내하면서 접근성과 편의성 강화에 주력 중이다.

보험사들은 상품 라인업 확대를 통한 가입자의 선택권 강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손해보험사 중 처음으로 디폴트옵션 판매에 나선 KB손해보험은 27개의 원리금보장상품과 38개의 실적배당형상품으로 라인업을 확대했고 상품 선정 관련 사내 위원회도 체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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