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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조작은 조직적, 전문 수사 인력 늘리고 처벌 강화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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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18면

‘금융범죄 수사 설계자’ 문찬석 전 합수단장

“국내에서 발생하는 대형 증권·금융 범죄를 담당하는 검사는 24명에 불과합니다.”

최근 빈번해진 대규모 금융 범죄를 두고 문찬석 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법무법인 남당 대표변호사)은 이렇게 말했다. 주식과 코인, 부동산 등을 중심으로 재태크 열풍이 불며 자산 투자에 관심은 높아졌는데, 관련 범죄를 막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단 것이다.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이 연일 세간에 오르내리던 지난 8일 문 변호사를 만나 대규모 금융 범죄에 관해 물었다. 문 변호사는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후 금융범죄 수사 요직을 거쳐 초대 증권범죄합수단장을 맡아 국내 ‘금융범죄 수사의 설계자’로 꼽힌다.

금융범죄 인지했을 땐 이미 피해

문찬석 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법무법인 남당 대표변호사)은 지난 8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빈번해진 대규모 금융 범죄를 막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문찬석 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법무법인 남당 대표변호사)은 지난 8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빈번해진 대규모 금융 범죄를 막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영풍제지 사태에 제도권 증권사도 휘청인다.
“영풍제지 사태는 주가조작 기법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게 없다. 2013년 증권범죄합수단이 출범하면서 1호 사건으로 다뤘던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과 수법은 동일하다. 당시엔 80여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천여 차례 통정·가장매매, 고가·물량소진 매수, 허수 주문 등으로 시세를 조종했다.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 역시 고전적인 주가조작 수법을 그대로 썼다. 주가 조작꾼들을 동원해 목표물이 된 회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주가 차트를 투자하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다른 한쪽에선 숨겨둔 계좌를 동원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차익을 실현한다. 전환사채(CB)발행, 무자본 인수합병(M&A) 등을 동원해 대량의 주식을 확보했다가 매도하면 개인 투자자가 대응하기 어렵다.”
올해 유독 주가조작 범죄가 기승인데.
“금융 범죄 수사에서 잘못된 신호를 준 탓이 크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산시장 급등으로 주식과 코인 투자 등에 전국민적 관심이 몰렸다. 그러나 금융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줬던 증권범죄합수단은 2020년 1월 폐지됐다. 범죄 수익을 얻을 시장은 어느 때보다 커졌는데, 수사할 조직은 사라진 셈이다. 합수단이 폐지된 2020년은 자산 시장이 연일 급등하면서 주가 조작이 크게 부각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장에 조정이 찾아오면 결국 사기였다는 게 드러난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수영장에 물이 빠질 때 누가 옷을 벗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 증권범죄합수단이 부활하면서 이런 범죄가 속속 적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SG증권발 급락 사태를 비롯해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이 올해 부각되는 이유다.”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나.
“특정 수사 기관 만으론 어렵다. 최근 빈번한 주가조작 세력의 범죄 등 금융 범죄는 다른 범죄와 특성이 상이하다. 이런 대규모 주가조작 범죄는 사전에 계획하고 실행한 뒤, 일시에 자금 회수에 나서는 식이다. 전문적이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터지고 나서야 수사 기관 쪽으로 넘어온다. 따라서 범죄 사실을 인지했을 땐 이미 피해가 커진 이후다. 범죄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니 수사도 협업이 중요하다. 2013년에 증권범죄합수단을 만든 취지도 검찰과 금융감독기관, 세무당국 등 다양한 기관의 협업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다양한 기관의 협업 없이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 범죄에 대항하기 어렵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금융 범죄와 일반 범죄와 다른가.
“금융범죄는 증거확보가 어렵다. 주식이나 코인 등의 시세조작만 놓고 보더라도 요즘은 전산화되고 디지털로 처리된다. 그렇다고 모든 투자자를 범죄자로 예상하고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령 지난 4월 터진 SG증권발 대규모 하한가 사태만 보더라도, 라덕연 일당은 경제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던 이른바 ‘전문가’다. 여기에 투자회사를 설립해 판을 깔고 장기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국내 금융범죄 수사 규모는 얼마나 되나.
“대형 금융 범죄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서울남부지검이 유일하다. 그러나 남부지검에서 금융범죄를 담당하는 검사의 수는 부장검사급을 포함해도 18명가량에 불과하다. 부활한 증권범죄 합동수사부에 10명, 금융조사1부와 2부는 각각 4명에 그친다. 지난 7월말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이 출범하면서 6명의 검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다 합쳐도 24명의 검사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규모 금융 범죄를 담당해야 한다. 몇 년씩 손도 못 대는 사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인력을 늘리면 해결되나.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금융 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전문성이 필요하다. 가령 조직폭력을 수사하던 검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전세 사기나 중고차 사기 등을 담당하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가조작이나 가상자산 사기 등 금융 범죄는 다르다. 범죄자들의 생각을 읽고 수사를 진행하려면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전문성이 쌓여야 한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합수단이 폐지된 기간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흩어졌다는 건 타격이 작지 않다. 이제부터 다시 전문성을 쌓아가야 할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는 필요한 조치

금융 범죄를 언급하던 문 전 단장은 최근 정부의 공매도 금지에 대해선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공매도를 막으면 인위적인 주가 부양에 나설 주가조작 세력이 활개 칠 것이란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에 앞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가 주가조작을 부추길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데.
“한국이 효율적 시장(Efficient Market)인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시가총액이 큰 몇몇 대형 종목을 제외하곤 국내 상장사들은 시세조작에 취약하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 조작 세력이 특정 종목의 주가를 급등시키기 쉬워진다는 세간의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상태로 공매도를 내버려 두면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주가조작도 가능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란 얘기인가.
“그렇다. 국내 금융시장은 외국인이나 기관 자금에 쉽게 흔들리곤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외국인과 기관에 유리한 공매도 제도가 지탄을 받곤 했다. 이를 손보고 완벽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공매도 제도를 완벽하게 개선하는 건 간단치 않다. 제도 개선을 고심하기 전에 한시적으로라도 조처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
금융 범죄는 기껏 기소해도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최근 추세를 보면 처벌이 강해지고 있다. 라임 사태의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2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옵티머스 사태를 일으킨 김재현 전 옵티머스 자산운용 대표는 징역 40년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여전히 금융 범죄에 처벌이 약하다는 데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피해자들의 생계 곤란은 물론 최악의 경우 자살로 이어지는 금융 범죄는 흉악 범죄와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그간 처벌이 약했던 이유는.
“자본시장법상 문제가 있었다. 금융 범죄의 경우 형량을 결정하는 건 부당이득액 규모다. 범죄를 통해 거둔 부당이득이 얼마인지에 따라 형량이 좌우되는데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못했다. 가령 주가 조작을 통해 주가가 올랐더라도 어느 정도가 조작에 의한 것이고, 시장 상승에 따른 상승분은 어느 정도인지 따진다. 동종업계 지수를 비교하는 식이다. 여기에 일반인들이 따라 사서 오른 건 또 빼야 한다. 범행한 사람들끼리 관여율도 따져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부당이득액 확정이 불가능하다. 처음 기소할 때는 부당이득이 수천억원이라고 제시하더라도 결국 ‘불상의 이익’이 돼 버린다. 부당이익이 얼마인지 확정할 수 없으니 형량이 줄어든다. 다행히 올해 법이 개정됐다.”
어떻게 바뀌었나.
“이른바 ‘주가조작 패가망신법’이라고 불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는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 금액을 부당이득액으로 산정한다. 부당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불상의 이익’에 숨어 엄벌을 피한 금융 범죄자들에게 엄한 처벌이 가능해지면 상당한 효과를 낼 것이다.”
금융범죄를 줄일 방법은.
“제도나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금융 범죄는 언제나 제도권이나 수사 당국보다 앞서간다. 장기적으로 전문 수사 인력을 늘리고, 처벌과 범죄수익 박탈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 교육이다. 금융 투자에 관심이 비약적으로 커진 것과 반대로 국민 대다수가 제대로 된 금융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금융상품에 대한 변별력이 없다. 이게 적법한 투자인지 혹은 불법 유사투자회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수익을 원한다. 이런 걸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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