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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수명 누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6호 34면

수명 누님
이시영

팔십 넘은 수명 누님이 햇밤 다섯 되를 부친다고 전화를 하셨다
주소를 불러드리는데 ‘동양파라곤아파트’ 대목에서 몇번이나 틀렸다
운조루 주인인 그 누님은 어릴 적 우물가에서 나를 업어 길렀다
『호야네 말』 (창비 2014)

 옛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집에 곧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시인 조병화는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작은 집을 청와헌이라 불렀습니다. 청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박한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울 성북동에는 시인 한용운이 머물렀던 심우장이라는 가옥이 있습니다. 소를 찾는 집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이 깃든 이름입니다. 참고로 오늘 시에 등장하는 전남 구례의 운조루,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집에도 대부분 이름이 있습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것. 다만 유행처럼 점점 길고 어려운 외래어의 조합으로만 이름을 붙이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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