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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스크린 오른 12·12 사태, 현대사 영화의 봄 올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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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28면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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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전혀 몰랐겠지만, 그래서 매우 뜻밖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껏 12·12 사태를 단독으로 다룬 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다. 그건 정말 ‘놀랄 만한’ 일이고 그래서 김성수 감독이 새로 내놓은 ‘서울의 봄’도 ‘놀랄 만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번 작품은 역사의 ‘놀라운’ 재발견으로 평가된다. 아프고 어두운 역사도 후세는 제대로 알고 가야 하는 법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사태가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의 6시 50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약 10시간의 군부 쿠데타를 촘촘한 드라마로 기록해 낸다. 그 면밀함이 남다르다. 당시 쿠데타를 주도했던 전두환은 전두광(황정민)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수 많은 배우들이 노태우와 정호용, 차규헌, 황영시 그리고 허화평과 허문도, 장세동 등 실존 인물들을 연기해 낸다. 주목할 것은 이들 반란군 말고 그 상대편인 진압군 쪽에 서서 싸웠던 세 명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김진기 헌병감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그리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다. 이들은 각각 김성균과 정만식 그리고 정우성이 연기한다. 노태우의 비중보다 이들 셋의 비중이 더 크게 다뤄진다.

드라마 ‘제5공화국’ 12·12 짧게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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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화 ‘서울의 봄’은 전두환과 장태완의 일대일 대결로 12·12 사태를 축약하고 집중화 해 내는데 주력한다. 그 과정에서 ‘윤색의 윤리학’을 얼마 만큼 지켜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대결의 서스펜스가 관객들로 하여금 40여 년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거나 상상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해내고 있다. 황정민은 광기의 연기를, 정우성은 잘 생기고 신사다우며 멋있는 이미지의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선과 악의 싸움, 악행과 정의의 싸움, 그 이분법을 구축해 낸다. 그 단순한 서사가 복잡한 역사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게 해 준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대중적 휘발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이다. 흥행이 폭발할 수도 있다. 그러면 12·12의 역사는 정치군인의 무장 반란이었다는 팩트가 대중적으로 각인될 것이다. 그렇게 역사가 정리될 것이다. 감독 김성수는 12·12를 상업영화의 방식으로 만들어 영화 흥행도 성공시키고 사회적으로 역사의 정의도 세우는, 두 마리 토끼를 포획하려 한다. 비상하고 영리한 전법이다.

그동안 12·12 사태만 단독으로 영화화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디서 계속 봐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MBC드라마 ‘제5공화국’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진정으로 삼삼한 재미가 넘치던 정치극이었는데, 배우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전두환 역을 했으며 서인석이 노태우 역을, 홍학표가 장세동을, 이진우가 허화평 역을 맡아 권력 내부의 갈등을 그려냈다. 이 드라마는 마치 조선시대 궁중 암투극을 보는 것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아직도 이 드라마는 일부 케이블TV에서 심심치 않게 재방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12·12 사태가 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착시를 갖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 역시 12·12 사태는 비교적 짧게 언급하고 넘어 간다. 그보다 12·12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이 이후 어떤 갈지자 행보를 보였는지,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태를 일으켰는지를 기록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지금껏 모든 역사를 아이템으로 다뤄 왔지만, 불문율처럼 이런 얘기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아웅산 테러 사건이고 또 하나는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이었으며 마지막은 문세광 저격 사건이다. 여기에 12·12 사태 얘기도 많이 금기시되던 소재였다. 비교적 최근까지 당사자들, 즉 이런 현대사 속 사건의 희생자들과 가해자들이 다수 생존해 있었던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면이 있다.

‘택시 운전사’ 역사적 장면, 두 인물로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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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금기 아닌 금기가 하나 둘 깨지고 있다. 아웅산 사건은 지난해 배우 이정재가 희대의 역작 ‘헌트’로 만들어 주목받았다. 12·12는 이번 ‘서울의 봄’으로 물꼬를 텄다. KAL기 사건은 오래 전 고 신상옥 감독이 ‘마유미’란 제목으로 만들어졌으나 다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한 유명 감독이 TV 시리즈로 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세광 저격사건 역시 한 중견 감독이 시나리오를 쥐고 있으며 곧 제작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의 봄’에 대한 평가와 흥행 여부가 이들 후속작들의 제작에 기름을 부을 것인지, 찬물을 끼얹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12·12 사태를 정 중앙에 놓으면 그 전의 10·26 사건에서 그 다음의 5·17 비상계엄확대, 곧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들이 이 1년의 짧고 처참했던 시기를 기록해 냈다. 그리고 1987년의 6·10 항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도 섭렵해 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꾸준히 씻김굿을 해왔으며 또 그럼으로써 영화가 역사를 진화시키려 애를 써 온 셈이다.

10·26 사건은 2005년 임상수 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을 통해 최초로 극화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송재호)이 총을 맞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더 놀랍고 실망했던 것은 박정희 ‘각하’ 가 수시로 일본어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건 김재규(백윤식)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궁정동의 암살극을 마치 사무라이들의 난투극처럼 묘사한 측면이 있다.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 출신이었고 김재규 역시 일본 육군 출신이다. 둘 다 해방 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육사의 전신)를 거쳐 국군이 된다. ‘그때 그사람들’은 두 인물의 친일 흔적, 대일 의존도를 희화하고 풍자한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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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은 김지훈 감독이 2007년 ‘화려한 휴가’로 만들었지만 조금 더 드라마틱한 작품은 2017년 나온 장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이다.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사태를 영상에 담아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진실을 폭로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와 그를 광주로 실어 날랐던 택시 기사 김사복(송강호)의 이야기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두 인물의 얘기로 축약해 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구체적으로 사건의 내면에 다가서게 했다. 얼마나 잔인한 시대였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를 목격하게 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빵으로 사는가 장미로 살아 가는가. 그 실존적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사복이 독일 기자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며 순천으로 먼저 빠져 나온 후 국밥 한 그릇 먹고 나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혼자 허걱허걱 울컥이다가 차를 광주로 유턴 시키는 장면은 분명 영화적으로 만들어지고 윤색된 내용이기는 했으나 사람들의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역사를 움직이는 장면을 보게 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6·10 항쟁의 드라마는 장준환 감독이 만든 2017년작 ‘1987’만한 것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다. 당분간 관련 영화로는 전무후무한 역작이라는 평가가 이어질 것이다.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이한열(강동원)의 모습이 거의 실사처럼 복기돼 그려지고 그 역사적 환기가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720만이 넘는 관객들이 이 영화에 몰려 들었다. 정치권에서는 6·10 체제 이데올로기의 계승과 해체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6·10 정신을 추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도 곧 나올 예정이라 영화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봉될 김대중 전기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이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한 움큼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영화는 늘 그 옆을 지키고 있다. 역사는 영화가 되고 영화는 역사가 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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