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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대학 졸업자 안된다?… 野 ‘고졸만 응시자격’ 재발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해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내용을 그대로 담은 간호법 제정안을 재발의하면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간호법안에 대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지만 문제된 내용을 수정 없이 포함시킨 것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는 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지난 2년 동안 보건의료계를 갈등과 분열의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간호법안이 폐기된 지 6개월밖에 안됐다”며 “재론의 가치가 없는 악법을 민주당이 기어이 다시 발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폐기된 간호법안은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 학력을 제한한 ‘한국판 카스트법’이었다”며 “민주당은 재발의한 간호악법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전날 고영인 의원 대표 발의 형태로 간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그동안 “새로운 간호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재발의는 예상된 수순이었다. 문제는 달라진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을 동시 발의해 의료 직역간 갈등 조정 기구를 만들고 ▶대한의사협회가 우려하는 간호사 단독 개원의 가능성을 낮추고 ▶간무협을 법정단체로 인정하는 등 이전 법안에 비해 진일보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간호사의 단독 개원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 아닌 데다, 간무협의 법정단체 인정은 이미 지난 법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라 사실상 지난 간호법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특히, 애초 논란이 됐던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이 그대로 유지됐다. 법안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조건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라고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전문대 간호조무학과는 물론 유사 학과인 사회복지·보건의료행정·의료복지학 등의 4년제 대학이나 전문대를 졸업하고도 간호조무사 시험을 볼 수 없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들이 간호조무사 시험을 보기 위해선 다시 간호학원을 다녀야 하게 규정한 만큼 사실상 대졸자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를 제한받는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간무협과 국민의힘의 지적이다. 그런 제한을 두면서도 유일하게 간호학과 출신은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도록 예외를 두면서 형평성 문제도 초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5월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5월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이런 문제점에 대해 간무협은 지속적으로 수정을 요구해왔다. 지난 간호법 논란 때도 이미 자격요건을 ‘특성화고 간호관련 학과 졸업자 또는 그 이상의 학력이 인정되는 자’로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간호협회 측에선 “학력 상승에 따른 임금, 근로 조건 등에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상 ‘간호조무사는 고졸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라며 “간호협회가 간호조무사를 ‘고졸 출신’이나 ‘간호학원 출신’으로 고착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해당 조항의 문제점도 이미 여야가 공유한 상태였다. 지난 5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폐지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학력 상한 폐지 방침을 밝혔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지난 7월 간호법 재발의 추진 방침을 발표하며 “간호조무사 자격 학력 인정 문제도 더 유연하게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했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재발의한 건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50만명 간호사와 12만명 간호학과 대학생’의 표심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을 재발의한 건 또다시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 프레임을 만들려는 전형적인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민주당이 간호법을 재발의한 다음 날인 23일은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 자리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참석했는데, 참가자들은 ‘간호법 제정’라고 적힌 디지털 팻말을 들고 김 대표를 압박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간호협회의 조직력을 이용하고자 간호법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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