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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 드는 달빛철도, 2분 빨리 가려고 5조 더 쓰자는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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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내놓는 주요 법안을 두고 포퓰리즘 논란이 커지고 있다. 21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최근 여야가 합심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에 나선 달빛고속철도가 '뜨거운 감자'다. 대구와 광주를 잇는 고속철도로, 대구·광주의 순우리말 명칭인 ‘달구벌’과 ‘빛고을’의 첫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16일 대구 북구 대구시청 신격청사에서 만났다. 이날 홍 원내대표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달빛고속철 특별법이 통과하도록 잘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16일 대구 북구 대구시청 신격청사에서 만났다. 이날 홍 원내대표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달빛고속철 특별법이 통과하도록 잘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단선→복선에 5조원 더 들어

여야는 대구·광주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2038년 아시안게임 유치와 영·호남 동서 화합을 개통 명분으로 내세워 예타 없이 추진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쉽게 말해 정부의 사업성 평가를 거치지 않고 법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역대 최다인 261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데 비해 경제성은 낙제점이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발표한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달빛고속철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은 0.483으로 나타났다. 통상 1.0이 넘어야 비용보다 경제적 효용이 크다고 보는데 이의 절반도 안 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사 기간 물가 상승과 설계 변경 등으로 실제 비용은 예상보다 20~30% 더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며 “이 정도면 고려할 여지도 없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특별법대로 '복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총사업비가 11조299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광주~대구 구간 철도 구축은 2021년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포함됐는데 당시 총사업비는 4조5158억원으로 예상됐다. 단선 고속화 일반철도가 기준이다. 국토교통부는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올해 사업비를 다시 추계했는데 6조429억원으로 책정했다. 특별법의 복선 고속철도와 5조2570억원 차이다. 복선은 단선과 달리 선로를 2개 이상 놓아야 해 비용이 더 든다. 고속철도 역시 선로 크기나 곡선 반경 조정으로 설계속도를 300㎞/h 이상으로 높이는 데 수조원이 더 필요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관련 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달빛고속철을 복선 고속철도로 운행하면 광주~대구 구간 84분이 소요된다. 단선 고속화 일반철도 운행 시 소요시간은 86분이다. 2분이 빨라지는데 5조원이 넘는 돈이 쓰이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간 정차역이 많다 보니 최고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이 얼마 되지 않아 고속-일반철도의 차이가 크지 않다”며 “또 수요를 예측해봤을 때 단선으로도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고 봤다. 법으로 복선을 정할 것이 아니라 사업 계획을 정밀 검토해 단·복선 여부를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차역 모두 ‘인구감소지역’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달빛고속철은 광주 송정역에서 전남 담양, 전북 순창·남원·장수, 경남 함양·거창·합천, 경북 고령을 거쳐 서대구역으로 이어진다. 이 중 광주와 대구를 제외한 8개 시·군은 모두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개 ‘인구 감소 지역’에 포함됐다. 정작 고속철을 이용할 주민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광주-대구 고속도로의 경우 지난해 일일 교통량은 2만2322대로, 전국 고속도로 평균치(5만2116대)의 43% 수준이다.

달빛고속철은 시작에 불과하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15일 도심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는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부는 경부·경인·경의·경원·경춘·중앙선 등 6개 국철노선(71.6㎞)과 도시철도 4개 노선(29.6㎞)의 지하화에 45조2000억원이 들 것이라 추산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엔 예타 면제 조항이 포함됐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총선 때면 예타 면제 폭주

김진표 국회의장은 수원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13일 발의했다. 수원시가 사업비를 20조원가량으로 추산한 대규모 사업인데 이 역시 예타 면제가 포함됐다. 민주당은 여당의 ‘메가시티’ 공약에 맞서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의 예타 면제를 당론으로 채택한 상황이다. 총사업비 11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구경북(TK)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게 올해 4월인데 국회의 예타 폭주는 이어지고 있다.

예타 과정에선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조정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예타를 면제할 경우 사업을 끝까지 추진할 수 있는 데다, 사업 기간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또 정치적으론 해당 지역 주민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총선이 다가오면 예타 면제가 폭주한다는 풀이가 나온다.

실제 총선 직전과 해당 년도에 예타 면제가 급증했다. 2018년 예타 면제 사업 총사업비는 2조9000억원이었다. 2019년과 2020년엔 36조원, 30조원으로 늘었다. 이후 다시 총선 시즌 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2019~2020년 총선을 의식해 예타 면제가 늘어난 것처럼 올해도 총선 전 지역 챙기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 간 나눠먹기 식으로 예타 면제를 남발하다 보니 재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산 늘리는 데도 여야 없다

국회 예산안 심사는 ‘본게임’ 전부터 증액 잔치가 열렸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본격 심의하기 전 각 상임위원회는 예비심사를 하는데, 20일까지 상임위 예비심사 순증액 규모만 14조원이 넘는다. 정부가 예산으로 0원을 책정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은 민주당 단독 의결로 7000억원 늘었다. 지역화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부터 밀고 있는 이른바 '이재명표' 정책이다.

청년 월 3만원, 국민 월 5만원을 내면 대중교통 비용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청년 패스’ 예산도 새로 편성했다. 역시 이 대표가 도입을 주장했던 정책이다. 민주당 주도로 농해수위와 국토교통위는 새만금 관련 예산을 4373억원 증액했는데 호남 지역 표심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노인 임플란트 건강보험 지원 확대(2개→4개),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등 40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명절 기간엔 전 국민 대상 ‘반값 여객선’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노인 무릎 관절 수술비 지원 확대 등도 예산안에서 증액하려는 선심성 사업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예산안 총지출은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늘릴 수 없다. 감액한 범위에서만 증액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총지출이 증가하는 만큼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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