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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든 한국팀 롤드컵 우승 쾌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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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팬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팬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계적 관심 속 페이커 이상혁의 T1, 중국팀 눌러

“게임 중독” 편견과 셧다운제 뚫고 정상에 우뚝 서

‘e스포츠계의 메시’로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이 이끄는 한국의 T1이 세계 최대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 결승전에서 중국의 ‘WBG’를 꺾고 우승했다. 이상혁과 T1은 각각 네 번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e스포츠의 열기였다. 그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이번 경기 티켓은 지난 8월 진행된 사전 예매에서 20분 만에 매진됐다. 표를 못 구한 팬 1만5000명은 차가운 날씨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거리 응원에 나섰다. 암표 값이 임영웅 콘서트를 능가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런 열광이 낯선 기성세대라면 우리 청년들의 성취에 기뻐하기 앞서 e스포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선수들은 게임이 중독성 유해물이라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줄곧 싸워야 했다. 2003년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의 인터뷰는 아직도 회자한다. 남성 진행자가 임 선수에게 “현실 속에서도 위기감 같은 게 느껴지나요.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이라고 질문했다. 여성 진행자는 “폭력배 쪽으로 연결된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게임을 범죄와 폭력에 연관시키는 질문에 황당해 하는 세계적인 선수의 표정이 e스포츠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반복 소환된다. 불과 2년 전까지 유지된 셧다운제(청소년의 심야 게임 접속 차단)도 있다. 2012년 프랑스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중3 프로게이머가 경기 중 “아 맞다. 셧다운당하는데 헐”이라는 말을 남긴 뒤 세트를 포기해 세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런 장벽을 뚫고 e스포츠 강자로 우뚝 선 청년들의 국가경제적 기여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대회의 경제적 효과가 최소 2000억원에 이른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T1 선수단을 격려하면서 “게임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쾌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전반이 e스포츠를 견인해온 청년 세대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 노동위원회 위원이 고양시 주엽역 인근에 ‘우리 아들딸, 수능도 꿈도 GG하고 놀(LoL)자~’라는 현수막을 걸어 수험생을 화나게 했다. ‘Good Game’이 어원인 GG는 게이머들 사이에선 게임을 포기할 때 주로 쓴다. 어설픈 흉내로 마음만 상하게 했다. 어제 사무총장이 사과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라는 청년 비하 현수막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이상혁), “우리나라에서 시작해 지구 반대편까지 문화로 자리 잡았다”(임요환)는 선수들에게 공감하며 육성 정책을 펴야 e스포츠의 영광은 계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