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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오면 근대문화가 보인다] 난폭한 실체 뒤편에 가려진 흐릿한 진실을 담채 기법 이용해 화폭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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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권태경 시각작가

300만 도시 인천에는 다양한 청년 예술인이 살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2020년부터 인천 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를 운영하고 있다. 시작공간 일부는 창작의 첫걸음을 떼기 힘든 현실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의 시작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청년창작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현재 시각, 음악, 연극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며 인천을 기반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인천의 청년 예술인들을 시민기자 박수희, 유사랑씨가 만났다.

권태경 작가는 ‘난폭한 실체 뒤편에 가려진 흐릿한 진실’을 담채 기법을 이용해 화폭에 담고 있다. [사진 인천문화재단]

권태경 작가는 ‘난폭한 실체 뒤편에 가려진 흐릿한 진실’을 담채 기법을 이용해 화폭에 담고 있다. [사진 인천문화재단]

컴컴한 암청색의 캔버스를 들여다보면, 서서히 희끄무레한 실루엣이 망막을 비집고 들어선다. 밤안개에 뒤덮인 해안의 어슴푸레한 불빛들, 컴컴한 어둠의 밑바닥에서 은밀히 출렁대는 물결들,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가로등의 무심한 빛줄기 같은 것들이 그림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각작가 권태경의 그림은 이처럼 흐릿한 경계를 매개로 무수한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권 작가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언뜻 명징해 보이는 실체의 배후에는 사실 얽히고설킨 진실이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너무 선명한 것들이 불편해요. 해상도 높은 사진이나 형상은 날카롭고 난폭하게 느껴져요. 새 안경을 썼을 때, 세상이 너무 또렷하게 보여 낯선 느낌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들에 대해선 다른 생각의 여지 없이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종종 실체 뒤편에 가려진, 흐릿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놓치곤 한다. 이것이 바로 권 작가가 ‘흐릿함’에 꽂힌 이유이자, 그가 화폭에 담아내려는 화두이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가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가르치는 불교학자이자 중견 불화작가세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자랐죠. 제가 주로 사용하는, 맑은 농도 물감을 여러 번 쌓아 올리는 담채 기법도 어머니께 받은 거예요.”

영남대 디자인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세종대 대학원 회화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권 작가는 현재 인천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청년 작가다. 인천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최근 인천의 ‘아트스페이스 카고’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__로 가는 길’이다.

‘__’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적지나 생각의 실마리와 같이 규정되지 않은 저마다의 길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아직 정의되지 않은 대상을 마음으로 응시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소설가 정을병은 ‘너무 되바라진 진실은 추하다’고 자신의 소설 ‘오목놀이’에서 묘사한 바 있다. 제아무리 빼어난 골격이라도 적당히 살로 가려져야 아름답다는 것이다. 흐릿함으로 가려질 때 의미가 확장되고 빛나는 것들이 세상엔 있다. 권태경 작가의 그림들도 그렇다.

시민기자 유사랑은

원래는 여러 신문에서 오랫동안 시사만평을 그려 온 시사만평가다. 커피로 그림을 그려 커피화가로도 활동하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장르의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이기도 하다. 특히 200여 명의 인물을 인터뷰한 전문 인터뷰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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