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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공동 대통령’ 불린 퍼스트레이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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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로잘린 카터 여사가 남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2018년 8월 미국 노터데임 대학에서 열린 자원봉사 행사 ‘지미 앤 로잘린 카터 워크 프로젝트’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로잘린 카터 여사가 남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2018년 8월 미국 노터데임 대학에서 열린 자원봉사 행사 ‘지미 앤 로잘린 카터 워크 프로젝트’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재정립한 로잘린 카터 여사가 지난 1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96세. 그는 1977~81년 단임 집권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다.

이들 부부가 세운 카터 재단은 19일 “로잘린 여사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발표했다. 로잘린 여사는 치매와 노환으로 오랜 기간 투병해왔다. 암 투병 중인 카터 전 대통령은 “로잘린은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을 함께 일궈낸 파트너”라며 “내게 언제나 현명한 안내자가 돼주었고, 이 세상에서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줬다”는 애도의 글을 냈다.

남편의 집권 시절 로잘린 여사는 백악관 내에서 ‘공동 대통령(co-President)’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로잘린 여사는 카터 대통령의 뜻으로 백악관 내 각료 회의에도 항상 참석했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1994년 북핵 위기 고조 당시 방북해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사진에서도 로잘린 여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카터 대통령 재임 당시 방한에서도 로잘린 여사는 딸 에이미를 대동하고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퍼스트레이디로서 독자적 정책 활동도 펼쳤다. 고령자들의 정신건강 문제 해결이 그가 특히 애정을 가진 분야다. 워싱턴포스트(WP)는 “로잘린 카터는 자신이 현안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며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는 카터 대통령이 로잘린 여사에게 의지한 바가 컸고 부부간의 신뢰 관계가 두터웠기에 가능했다. 카터 대통령은 연설 또는 주요 정책 결정 이전에 로잘린 여사와 항상 의논했다고 한다. 로잘린 여사는 자서전 『플레인스(Plains, 조지아주 도시명) 출신 퍼스트레이디』에서 “난 남편의 공명판(sounding board, 음향을 증폭시켜주는 장치)이었다”며 “나를 포함해 가족들은 그에게 참모진보다도 더 날카로운 현안 질문을 퍼붓곤 했으며, 이런 대화를 통해 그가 사고의 폭을 깊게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로잘린 여사는 이어 “대통령이란 존재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굉장히 고립될 수 있다”며 퍼스트레이디와 참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잘린 여사는 조지아주 플레인스라는 소도시 출신으로, 아버지를 13세에 여의면서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보살피고 가계를 꾸려나가며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했다. 지역 대학을 졸업한 뒤, 해군 장교였던 지미 카터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46년에 웨딩 마치를 울린 이들은 77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해 역대 미국 대통령 부부 역사상 최장 결혼 기간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로잘린 여사는 남편이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나가면서 정치에 본격 눈을 떴다. 남편이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 패해 단임으로 임기를 마쳐야 했을 땐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부는 곧 카터 센터를 세우고, 고령자 정신건강 문제 등을 계속 챙기며 퇴임 후에도 비정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는 19일 공동 성명을 내고 “로잘린과 지미 카터가 보여준 부부의 상은 파트너십의 이상적 정의를 내려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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