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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년차, 퇴근하면 이력서 써요"…직장인 80%는 '퇴준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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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출근하는 직장인들. 연합뉴스

출근하는 직장인들. 연합뉴스

2년 차 직장인인 강모(28)씨는 퇴근 후에 집 대신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이 시간부터는 '취업준비생 모드'다. 채용공고를 살펴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력서에 적을 스펙도 쌓는다. 지난달에는 공인중개사 1차 시험을 치렀다. 강씨는 "지금 직장에 평생 다닌다는 생각이 없다. 1~2년 안에 그만두는 게 목표"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이른바 퇴준생(퇴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직장인(963명)의 절반 이상이 "구체적이지 않지만 퇴사 계획이 있다"(53.8%)고 답했다. 10명 중 3명은 "구체적인 퇴사 계획이 있다"(27.6%)고 했다. "정년까지 다닐 계획"이라는 직장인은 3.6%에 그쳤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퇴사를 원하는 구체적인 이유로는 "이직해서 연봉을 높이려고(25.6%)"가 가장 많았다.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22.7%)"가 뒤를 이었다. 규모가 더 큰 기업으로 이직하거나(13.3%) 회사 사람들이 싫어서(11.6%) 퇴사를 생각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결혼 여부에 따라 살펴보면 미혼자는 연봉(28.5%) 때문에, 기혼자는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26.5%) 퇴사를 원했다. 상대적으로 기혼자들이 안정성과 장기근속을 중시한다는 분석이다.

많은 직장인이 '사표를 품은' 배경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예전보다 약해진 영향이 있다. 이명지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직장인들이 현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지 않을 것으로 여기면서 연봉과 직무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이직하는 추세"라며 "특히 사회 초년생들은 업무나 회사가 자신과 안 맞는다고 판단했을 때 빠른 퇴사 후 진로를 다시 찾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성과와 개인을 별개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한동안은 회사를 위해 더 많은 일을 맡아보려 했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리는 구조"라면서 "업무를 통한 자기 발전이 없다고 느낄 때 퇴사를 결심한다"고 했다. 실제 김씨는 올해 두 차례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사측의 설득으로 '일단 보류'한 상태다.

'퇴사 행렬'이 또 다른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21년부터 유통업계 한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지모(27)씨는 1년 이상 취업을 준비해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는 "입사 동기 절반이 올해 들어 퇴사했다"며 "회사는 남은 인원이 더 퇴사하지 않는지를 감시하는 분위기라 회의감이 크다"고 했다. 지금 맡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 본격적으로 이직 자리를 알아볼 계획이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설치된 일자리 정보 게시판. 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설치된 일자리 정보 게시판. 연합뉴스

퇴사를 희망하는 직원들이 많으면 결국 기업에 부담이 된다. 일을 실제로 그만두지 않고 최소한의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때문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에 달하는 손실이 나고 있다는 추산(갤럽)도 나왔다. 회사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요란한 퇴사(loud quitting)' 역시 동료의 사기를 꺾거나 회사 이미지를 깎아내려 생산성을 낮춘다는 지적이다.

퇴사·이직 자체를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지난 2021년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오모(31)씨는 연봉이 약 1.5~2배로 올랐다. 오씨는 "이직하려는 사람은 업무 성과와 평판을 중시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했다. 기업도 이직 시장에서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는 등 효과적인 인력 배치에 도움이 된다.

전문가와 업계는 회사가 직원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짚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대기업에서도 중도 퇴직이 많아지는 등 노동시장이 유동화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직장을 보는) 눈높이는 달라지는데, 기업의 체계·문화가 더디게 변화하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한 중견기업의 박재철 인사팀장은 "퇴사율이나 사유는 연차 별로 차이가 있다"면서도 "직원들이 불만과 고민을 제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부분이 많아 내부 설문과 면담 등 소통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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