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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위기의 K컬처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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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황금 막내’가 일을 냈다. 첫 솔로 앨범 ‘골든(GOLDEN)’으로 연일 K팝 솔로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는 BTS 정국 얘기다. 멤버 개인으로 팀 못지않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하며 BTS 입대로 인한 우려를 덜어냈다. 이번 앨범은 정국의 ‘성인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무해한 K팝 아이돌에서 섹스 심벌 팝스타로의 변신을 꾀했다. 전곡이 영어, 그것도 상당수가 19금 가사에, K팝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손색없는 주류 팝을 선보였다. 동양인 남성도 충분히 섹스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서구 매체들도 저스틴 팀버레이크, 저스틴 비버 등을 잇는 '팝의 왕'이라고 호평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말했던 대로 “K팝에서 K를 떼어내” 성공했다.

첫번째 솔로 앨범 '골든'으로 K팝 솔로 가수 최고 기록을 올리고 있는 BTS 정국.      [사진 빅히트 뮤직]

첫번째 솔로 앨범 '골든'으로 K팝 솔로 가수 최고 기록을 올리고 있는 BTS 정국. [사진 빅히트 뮤직]

 K팝은 이미 국내보다 해외에서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글로벌 비즈니스다. 한국인 멤버가 없는 K팝 그룹이 나오는가 하면, 해외에 K팝 육성 시스템을 수출(현지화 모델)하는 단계다. 하이브가 미국 유니버설뮤직그룹과 손잡고 미국에서 실시한 걸그룹 오디션에는 12만 명이 지원했고, 지난 주말 4개 국적 6명의 데뷔 멤버를 확정했다. 음악적으로도 K팝 공식을 깨는 이지 리스닝 트렌드가 안착했다.

K영화, K드라마 전방위 위기론
1조원 펀드로 구원투수 나선 정부
영화제 수상 목표 세우기 난센스

 이런 외연의 확장에도 내부에서는 위기론이 나온다. K팝의 주축인 동남아의 성장세가 꺾이는 등 부정적 시그널이 많아서다. 방시혁 의장이 “10년 뒤를 보며 가야 하고 그렇다면 지금은 위기다. 이제는 보다 주류로 가기 위해 K팝에서 K를 떼어내야 할 때”라고 말한 이유다. 아시아 음악의 하나였다가, K팝이었다가, 이제는 그냥 팝이 되자는 얘기다. 산업의 성장을 위해 확장성ㆍ대중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그렇게 K를 떼어버리면 한국의 K팝 팬들은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K팝 위기론은, 한국 영화 위기론에 비하면 엄살 수준이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영광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쪽은 ‘찐’ 위기다. 코로나19와 OTT로 소비 환경이 급변한 데다 극장의 요금 인상이 불을 붙였다. 여기까지는 극장의 위기였지만, 흥행공식을 답습한 안이한 기획이 총체적 위기를 불러왔다. 올해 한국 영화 중 이달 초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고작 4편이다. “보릿고개에 역병이 겹친 기분”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K드라마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제작비는 치솟고 방송사들이 편성을 줄이면서, 창고에 쌓인 작품이 80여 편으로 알려진다. 넷플릭스가 기회이기는 하지만 IP(지식재산)를 뺏기는 구조라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극심한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서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운 '범죄도시3'. [사진 에이비오 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극심한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서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운 '범죄도시3'. [사진 에이비오 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지난 14일 문체부가 K콘텐트 육성을 위한 ‘영상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했다. 유인촌 장관의 취임 후 첫 정책 발표다. 2027년까지 영상 콘텐트 산업 규모를 28조원(2021년)에서 40조원 규모로 키우고, 2028년까지 총 1조원의 ‘K콘텐트 전략펀드’를 새로 조성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투자하는 기존의 모태펀드와 달리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향후 5년 안에 에미상·아카데미상 등에서 수상할 킬러 콘텐트 5편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영화계 돈 가뭄을 해소해 제작의 활력을 주겠다는 지원책의 일환이지만, 다른 걸 떠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나 올림픽 메달 몇 개 따기 미션 같은 모양새가 난센스다. 정부가 목표를 세우고 돈을 풀면 절로 킬러 콘텐트가 나오는 게 아닌데 말이다. 지금까지 한류는 자유로운 창작자들이 스스로 일군 성취였다. 더구나 최근 정부는 영진위의 창작 지원사업이나 영화제 예산을 축소해 영화계의 돈줄을 움켜쥔다는 반발을 사 왔다. 결국 정부 입맛에 맞는 영화에 돈을 몰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다. 이래서 위기의 K컬처 구하기가 될까. 안 그래도 해외에서는 K팝ㆍK드라마 등 한류에 대해 정부가 주도해 만들어낸 국책산업이라며 깎아내리는 시선이 많은데, 그런 오해만 더 키우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