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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박정희가 ‘쓴소리 총리’를 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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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동호 경제에디터

내년 총선이 임박하자 국민의힘은 ‘김포 서울 편입’ ‘공매도 한시적 금지’ 같은 대중영합적 정책을 내놓았다. 선수를 빼앗긴 더불어민주당은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표의 수사검사 탄핵을 추진하고 ‘노란봉투법’ ‘방송3법’을 쏟아냈다. 시장원리를 허무는 ‘횡재세’도 거론한다. 거대 의석을 앞세우자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민생은 안중에 없다.

고질적 3류 정치가 질주하는 동안 한국은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는 경제 비상 상황에 직면했다. 경제 활력을 살려야 할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노사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노란봉투법은 전광석화로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도 116개 민생·기업 활력·경제혁신 법안은 내팽개쳐두고 있다. 도둑이 들었는데도 싸움만 하는 식이다. 점입가경의 3류 정치다.

경제 비상에도 3류 정치 점입가경
정부도 중심 못 잡고 핵심정책 표류
널리 탕평책 펼쳐야 리더십 강해져

정부라도 중심을 잡아야 할 텐데 미덥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에 앞서 탕평책부터 써야 한다는 조언과 충고를 각계로부터 거듭 들었다. 하지만 특정 출신과 인맥의 인사가 거듭 중용됐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회전문 인사로 들어오고, 새로 쓰려던 인사 중엔 상당한 부조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는 이에 대한 부정적 민심이 담겼을 터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의 인적 개편을 앞둔 윤 대통령은 인재풀 확충에 나서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도 좋다”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쓴소리하는 사람을 등용하고, 진영을 뛰어넘어 인재를 발탁하면 더욱 좋다. 윤 대통령은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배우기에 열심인데, 박정희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독재자로 각인된 박정희는 의외로 쓴소리를 잘 들었다. 남덕우 전 총리는 1969년 재무장관으로 발탁되기 전에 정책 비판을 쏟아내기로 유명한 대학교수였다.

그가 청와대에서 장관 임명장을 받고 나오려는 순간 박 대통령은 남 신임 장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이게 바로 대통령의 용인술이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일지라도 포용해서 쓴다. 남 전 총리는 ‘스카이대’ 출신도 아니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교황을 뽑을 때처럼 악마의 대변인이라도 둬야 한다. 아는 사람, 이념이 같은 사람만 쓰면 어떻게 될까.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에 열중하던 사람들의 집단사고와 달라질 게 없다.

윤 대통령은 편중된 인재 등용에 비판이 나오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했다. 이렇게 등용한 인사들의 스펙은 화려하다. 보고서도 잘 만들어 온다. 하지만 남 전 총리처럼 쓴소리를 거의 꺼내지 않는 예스맨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처세의 달인 관료들에게 둘러싸여선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 집권 3년 차를 바라보는데도 노동·연금·교육 개혁이 표류하고 지지율이 30%대에 갇혀 있는 이유가 아닐까. 3류 정치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면 더 많은 쓴소리 참모들이 필요하다.

남덕우는 ‘쓴소리 총리’로 기억된다. “오늘날처럼 정치는 3류로 전락하고, 경제는 저성장·고령화로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처방을 내리셨을까? 나라가 어지러울 땐 어진 재상이 아쉬워진다.”

남 전 총리 10주기 추모집 『화이부동』에 나오는 얘기다. 지금 한국엔 우리 국격에 안 어울리는 3류 정치가 판치고 있다. 5년마다 치르는 선거에서 정권을 잡으면 모든 특권을 누리고 아니면 모든 특권을 잃으니 여야가 사생결단이다.

이 혼돈의 상황을 돌파하려면 대통령 주변에 더 많은 ‘쓴소리 총리’를 둬야 한다. 비슷한 사람들로는 확증 편향만 강해지고 균형 잡힌 의사결정이 나오기 어렵다. 반대 진영 설득은 물론 합리적 중도층 포용조차 어려워진다. 정책을 펴기 전에 우선 탕평책부터 써야 리더십에 힘이 실리고 경제 살리기도 본격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