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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내준 문제, 내가 찾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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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주어진 문제를 남보다 많이 맞히면 경쟁 우위에 선다. 대학 입시, 자격증 취득, 취업까지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10대와 20대를 보낸다. IT산업과 스타트업을 취재하다 보면,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깨닫는다. 일과 삶에서 개인과 기업이 풀어야 할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느꼈다. 지난 13·14일 본지 기획인 ‘AI(인공지능) 전쟁 시즌2’를 취재하면서다.

지난달 5일 방문한 베를린 공대 캠퍼스. 여성국 기자

지난달 5일 방문한 베를린 공대 캠퍼스. 여성국 기자

좋든 싫든 AI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생성AI 기술을 ‘인쇄술 이후 가장 큰 지적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IT산업부는 미국·캐나다·영국 등 주요 AI 선진국을 돌며 국가별 경쟁력과 그들이 풀고 있는 문제를 살펴봤다. 이번 취재를 위해 지난달 독일 베를린을 다녀왔다.

유럽의 리더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지만, 빅테크 기업은 없다. 디지털 전환도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에 미국과 캐나다에 출장 간 동료에 비해 빈손으로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마침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됐나’ 의문을 품는 외신 기사도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AI를 활용해 풀어야 할 문제를 정의하고, 실속 있는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AI 전략을 총괄하는 연방교육연구부의 마리오 브란덴부르크 차관은 “(정부가) 빅테크나 대기업의 AI를 지원하는 것은 독일 경제구조에 맞지 않는다”며 “경쟁우위에 있는 제조업의 혁신과 노동력 부족 문제를 AI로 풀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베를린 공대 캠퍼스에서 만난 클라우스 로베르트 뮐러 교수는 “독일 AI 기술은 (AI 자체보다) 꼭 해결할 문제에 집중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장치를 AI로 효율화하는 방안이 주된 관심사”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전국 7개 도시에 위치한 독일AI연구센터(DFKI)는 화학·의학·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300개가 넘는 AI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장병탁 서울대 AI 대학원장은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AI 연구소를 만들고 있지만,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가 해결할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AI를 이용할 것인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시대, 우리는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까. 선진국과 기술격차를 좁히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남이 내준 문제만 실컷 풀다가 정작 우리가 AI를 활용해 풀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뒤늦게 발견하는 건 아닐까. 기업과 국가가 유행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날개를 어디에 달아,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정의하고 가다듬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