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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정부의 민낯…53시간만에야 전산 먹통 원인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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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가 18일 복구된 데 이어, 19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시도 새올행정시스템’도 복구됐다.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틀간의 현장 점검 결과 시도 새올행정시스템도 장애가 없다. 따라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는 모두 정상화됐다고 본다”며 “계속 모니터링하고 상황을 관리해 월요일(20일)에는 국민께 불편함이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평일인 20일이 이번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의 최대 고비다. 평일에는 전산망 트래픽이 주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행안부는 대응 상황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상민 ‘디지털 정부’ 홍보 나섰다 귀국

이번 사태는 행정전산망의 공무원 인증(GPKI) 시스템 일부 네트워크 장비에서 이상이 생기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전 세계 디지털 정부를 선도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낸 행안부는 원인 발표까지 53시간이나 걸렸다. 그에 따라 복구도 더뎠다. 일상·생업과 직결된 민원 업무 중단 등으로 시민들은 큰 불편과 혼란을 겪었다. 고 차관은 “지난 17일(사태 발생 당일) 처리하지 못한 민원은 신청 날짜를 소급 처리하는 등 국민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발생 및 대처를 둘러싼 책임자 문책은 불가피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정전산망을 통해 본인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정전산망을 통해 본인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있다. [뉴시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8시40분쯤 전국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공무원이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새올’이 일제히 마비됐다. 공무원이 ‘새올’을 쓰려면 GPKI 시스템을 통해 인증해야 하는데 장애가 생긴 것이다. ‘정부24’도 ‘새올’과 함께 멈춰섰다. 두 전산망의 운영 서버 등 장비는 대전의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있다. 전산망 복구에 투입된 민간 전문가 등은 GPKI 시스템과 연결된 ‘L4 스위치’(트래픽을 여러 서버에 배분하는 장비)에 이상이 발생한 것을 발견했다. ‘정부24’도 GPKI 시스템과 연결돼 있어 각종 민원서류 발급 등의 업무가 멈췄다. 이번 사태가 지난 16일 정보관리원이 행정전산망 관련 서버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란 일각의 추측이 나온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행안부는 사태 발생을 인지한 직후(17일 오전) 원인 규명 및 복구를 시도했다. 정오쯤 한 차례 ‘새올’ 등이 가동했으나 오후 1시쯤 다시 멈춰섰다. 결국 오후 6시 일과 종료까지 업무 정상화에 실패했다. IT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뭔지 파악하는 ‘출발점’을 찾는 것부터 상당히 늦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18일 새벽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하면서 ‘정부24’부터 임시 재개됐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복구가 더뎠던 배경에 대해 “네트워크 장비가 연결된 시스템에 (장비) 교체에 따른 문제가 새로 발생하지 않는지, 다수의 사용자가 사용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가장 나쁜 결말은 꼬리자르기”

행안부는 사태 발생 직후의 대처부터 미숙했다. 전 국민이 영향을 받는 시스템 장애 상황인데도 재난문자 발송 등의 조치가 없었다. 지난해 10월 15일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로 카카오톡 등 카카오의 서비스 전반에 장애가 발생했을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 차례 재난문자를 발송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그렇다 보니 전산망 장애 사실도 모른 채 전입 신고나 공문서 발급 등 민원 업무를 보려고 관공서를 찾았던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뒤늦게 나온 대처 방안이라는 게 수기(手記) 민원 접수였다. 공무원조차 이런 대처 방식에 의아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사태와 관련한 주무 부처의 장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사태 발생 당시 공교롭게도 “디지털 정부와 공공행정을 선도한다”며 해외 출장 중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이 장관은 예정보다 하루 이른 18일에 귀국했다.

사태 발생 사흘 만에야 원인을 규명하고 시스템을 복구한 데 대해 전문가와 민간 정보통신(IT)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일이 네이버·카카오 등 민간기업에서 발생했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털업체 한 관계자는 “서비스에 30분만 문제가 생겨도, (정부는) ‘보고서를 써서 책임자가 보고하라’고 한다”며 “(우리가) 정부와 직접 계약한 게 아닌데도 국민 대다수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너희 잘못이다’ ‘몇 시까지 문제를 해결하라’고 독촉한다. 이번 사태를 보며 과연 정부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지 의아하다”고 비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원인도 규명해야 하고 시스템 복구에 힘을 쏟다 보니 정부가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게 늦어질 순 있다”면서도 “(문제를 지적할 때와) 입장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카카오 대란 때와 비교하면 정부 대응에 너무 차이가 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IT와 관련한 정부의 사이버 보안이든, 서비스 장애든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장차관, 국·실장급이 한 번도 책임진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업체나 실무진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끝나는 게 이번 사태의 가장 나쁜 결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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