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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틈 없는 '직구 천국'…중국 포장 까보니 '애플 짝퉁'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통관을 마친 직구 제품들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통관을 마친 직구 제품들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지난 17일 오전, 경기 평택항 인근의 평택세관 내 특송물류센터(지정장치장)는 150여명의 근무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자 초 단위로 컨베이어 벨트에 '직구'(직접구매)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직구 특송업체 직원들이 X선 판독을 거친 제품을 집어 바구니에 넣고, 이를 안쪽 보관장으로 옮기는 작업이 쉼 없이 반복됐다.

한때 중국 보따리상으로 대표되던 평택항 풍경은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비대면 직구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알리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중국발(發) 직구가 인기를 끌면서 2019년 94만건에 불과하던 평택세관 직구 통관 건수는 올해 3368만건(10월 기준)으로 35배가량 폭증했다. 이곳의 통관 물품은 100% 중국에서 오는데, 전 세계 직구 물량이 들어오는 인천공항세관 다음으로 처리량이 많다.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중국발 컨테이너에 실린 직구 제품이 X선 판독을 거쳐 컨베이어 벨트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중국발 컨테이너에 실린 직구 제품이 X선 판독을 거쳐 컨베이어 벨트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모습. 평택=정종훈 기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특히 광군제·블랙프라이데이 등 '직구 시즌'과 맞물린 11~12월은 제일 바쁜 시기다. 평소엔 늦어도 이틀 안에 직구 통관이 완료되지만, 요즘엔 3~4일 지나야 통관이 가능할 정도다. 조정훈 평택세관 특송통관과장은 "짐이 너무 많아 사람 다닐 통로도 없어진다. 하루 평균 11만건인 평택세관 통관 건수가 올 연말엔 15만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발 직구 급증이 가져온 또 다른 문제는 지식재산권 침해 물품, 이른바 '짝퉁'이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세관에서 적발된 짝퉁 직구 제품은 2018년 1만403건에서 지난해 6만2326건으로 6배가 됐다. 적발 건수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2018년 3226만건에서 올해 1억219만건(10월 기준)으로 늘어난 직구 통관 건수보다 더 빠른 증가세다. 특히 적발 물품의 99.5%(올해 1~8월)는 중국에서 왔다.

평택세관도 비상이 걸렸다. 1차적으로 항구에 들어온 선박의 물품 목록을 보고 의심되는 품목을 걸러낸다. 특송물류센터로 들어올 때 X선 판독으로 일일이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는 게 2차 작업이다. 판독 직원이 현장 근무자에 알려주면 짝퉁이나 모의총포, 불법의약품 등으로 의심되는 제품을 따로 빼낸 뒤, 직접 포장을 뜯어 육안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평택세관의 인승환 주무관은 "직구 물량이 늘어나니 짝퉁 유입도 이전보다 급증한 걸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직구 통관 중 세관에 '짝퉁' 의심 제품으로 적발된 이어폰. 포장은 중국 이어폰인데 이를 까보니 애플 아이팟 형태의 제품이 나왔다. 평택=정종훈 기자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직구 통관 중 세관에 '짝퉁' 의심 제품으로 적발된 이어폰. 포장은 중국 이어폰인데 이를 까보니 애플 아이팟 형태의 제품이 나왔다. 평택=정종훈 기자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직구 통관 중 세관에 '짝퉁' 의심 제품으로 적발된 스마트워치와 무선이어폰. 삼성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있지만 제품 형태는 조잡한 편이다. 평택=정종훈 기자

17일 평택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직구 통관 중 세관에 '짝퉁' 의심 제품으로 적발된 스마트워치와 무선이어폰. 삼성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있지만 제품 형태는 조잡한 편이다. 평택=정종훈 기자

이날도 지재권 침해 의심 제품이 대거 적발됐다. 포장은 중국 무선이어폰 브랜드인데, 이를 까보니 애플·삼성 짝퉁으로 보이는 제품이 나왔다. 타이틀리스트 같은 유명 브랜드를 단 골프백도 '매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내부에 있어야 할 정품 태그가 없는 등 차이점이 두드러졌다. 구찌 가방 같은 명품도 종이 포장까지 비슷하게 흉내 냈지만, 외부 마감에서 조잡한 티가 났다.

짝퉁 적발을 돕는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 관계자는 "브랜드별 짝퉁 유입량은 유행과 선호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최근엔 유아·아동 대상 일본 캐릭터 브랜드 인기가 높은 편"이라면서 "다만 명품 짝퉁은 시기와 관계없이 꾸준히 유입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짝퉁 의심 제품은 해당 브랜드 확인을 받아 1~2주가량 감정이 진행된다. 짝퉁으로 최종 판정되면 창고에 보관하다 부수거나 소각하는 식으로 전량 폐기 처분한다. 출입이 통제된 센터 2층 창고엔 폐기를 앞둔 짝퉁 수천개가 쌓여있었다. 특히 국내 소비자가 선호하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 디자인을 똑같이 모방한 중국 제품이 여럿이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관세청도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짝퉁과의 전쟁'에 나섰다. 연말 직구 행사가 몰리는 다음 달 1일까지 짝퉁에 대한 집중단속을 진행한다. 인천공항세관은 패션용품, 평택세관은 시계·전자제품 등 세관별로 집중단속 품목을 정했다. 특히 한류와 맞물려 빠르게 성장하는 'K-브랜드' 보호를 위해 상표권·디자인권 침해 등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직구 제품 가격이 정가보다 지나치게 싸면 짝퉁인 걸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우려도 나온다. 세관 직원 1인당 평균 통관 건수는 2018년 19만9000건에서 올해 32만2000건(10월 기준)으로 증가했다. 평택세관도 다른 부서 직원을 직구 통관에 지원 보내 겨우 업무를 막고 있을 정도다. 익명을 요청한 세관 관계자는 "통관 직원이 모자라다 보니 전반적인 업무 부담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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