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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 한국 자회사 통해 中에 반도체장비 허가 없이 판매"

중앙일보

입력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중국 반도체기업 SMIC(중신궈지·中芯國際)에 미국 정부 허가 없이 제품을 수출한 혐의로 미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인 AMAT가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대상인 SMIC에 수백만 달러 어치 장비를 수출 허가도 없이 판매했다며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해당 장비 판매는 상무부가 SMIC를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한 2020년 12월 이후인 2021년과 2022년 이뤄졌다. 통신에 따르면 AMAT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생산한 장비를 한국에 있는 자회사에 여러 차례 보냈고, 여기서 장비가 SMIC에 넘어갔다. 이와 관련, AMAT 측은 성명을 통해 "회사는 미 정부 조사에 협조 중이다"면서 "수출 통제와 무역 규정을 포함한 세계 법규를 준수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발표된 AMAT 실적과 전망은 애널리스트 예상을 웃돌았지만 이날 미 당국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간 외 거래에서 한 때 주가가 7% 하락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중국에 미국 정부 허가 없이 반도체 장비를 판매한 혐의로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16일(현지시간)나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중국에 미국 정부 허가 없이 반도체 장비를 판매한 혐의로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16일(현지시간)나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가 중국군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20년 12월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단, 수출이 완전히 금지되는 것은 아니며 미국 회사가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 등을 SMIC에 판매할 때 반드시 정부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미국 정부가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제재하고 있지만, 수출 완전 금지는 아닌 까닭에 SMIC와 미국 간 거래는 여전히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MIC는 지난해 해외 판매 수익의 20%인 15억 달러(약 2조원)를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얻었다.

美 보란 듯…中, 시차 이용해 네덜란드 장비 수입 늘려

미국이 SMIC를 정조준하는 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함이다. 중국 '반도체 자급' 실현의 최전선에 있는 SMIC는 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팹리스)로부터 주문을 받아 컴퓨터·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중앙처리장치(CPU)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을 만든다.

수년째 미국이 대(對)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통해 반도체 굴기를 꺾어보려 애쓰지만, 중국이 최근까지 이를 우회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14일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위는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에도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미국 및 동맹국의 반도체 장비를 샀다는 내용을 담은 741쪽 분량의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 SMIC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첨병인 업체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SMIC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첨병인 업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장비를 국내로 들여오려고 반도체 장비 강국인 미국·네덜란드·일본의 수출규제 도입 시차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네덜란드다. 중국은 올해 1~8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를 32억 달러(약 4조1000억원) 수입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1%나 증가한 수치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수출규제를 시행했고 일본이 올해 7월, 네덜란드가 9월 규제에 본격 동참했는데, 중국이 규제 공백 기간이던 올해 상반기를 활용해 반도체 장비 사재기를 했다는 게 미 하원 분석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 자체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 상무부는 14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장비 수출을 금지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업체가 구형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장비를 가동하겠다고 주장할 경우 해당 장비를 중국 내로 반입할 수 있었다. 이밖에 중국이 해당 장비를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추후 검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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