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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벤티·타다는 설치 못한다…택시 강도 막는 '택시의 비밀'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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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지붕에 다양한 모양의 갓등이 달려 있다. 뉴스1

택시 지붕에 다양한 모양의 갓등이 달려 있다. 뉴스1

 일반 승용차와 택시를 구별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번호판 바탕이 흰색인 일반 승용차와 달리 영업용인 택시는 노란색입니다. 또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수단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지붕 위에 부착된 '택시 갓등' 입니다. 갓등은 전구나 불 위에 갓을 씌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요. 택시 갓등은 '택시 방범등' 또는 '택시 표시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엔 ‘택시운송사업용 자동차 윗부분에는 택시운송사업용 자동차임을 표시하는 설비를 설치하고, 빈 차로 운행 중일 때에는 외부에서 빈 차임을 알 수 있도록 조명장치가 자동으로 작동되는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비가 바로 택시 갓등입니다.

 택시업계에 따르면 택시는 영업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택시 갓등이 ‘우리 지역 택시’라고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도 하는데요. 그래서 구별을 위해 지역별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전국에 택시 갓등의 종류만 200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천 택시의 비행기 모양 갓등. 출처 위키백과

사천 택시의 비행기 모양 갓등. 출처 위키백과

 개중에는 해당 지역의 특산물이나 특징을 반영해 만들어진 갓등도 있는데요. 경남 사천에서 선보인 비행기 모형의 갓등이 대표적입니다. 공항과 공군부대, 그리고 크고 작은 항공산업 관련 업체가 모여있는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웃 나라인 일본에도 지역특산물인 우동이나 카스텔라, 초밥 등 다양한 형태의 갓등을 달고 운행하는 택시들이 있습니다.

 택시 갓등에는 덜 알려진 중요한 기능이 또 있습니다. 바로 택시 안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외부에 알리는 '방범등' 기능인데요. 기사가 위급 상황 때 운전대 부근의 특정 버튼을 누르면 갓등의 빨간 불빛이 일정 간격으로 깜빡이게 됩니다. 바로 외부로 구조요청을 보내는 건데요. 이걸 발견하면 곧바로 경찰에 알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택시 갓등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명확지 않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운행한 대절택시를 보면 지붕에 별다른 설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시발택시'도 차량 옆면에 시발택시라는 이름이 적혀있을 뿐 갓등은 없습니다.

1950년대 중반 등장한 시밡택시에는 갓등이 없다. 연합뉴스

1950년대 중반 등장한 시밡택시에는 갓등이 없다. 연합뉴스

 상당 기간 별도의 규격 없이 플라스틱으로 택시회사나 기사별로 제각각 만들어 달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제대로 규격화된 갓등이 등장한 건 1988년 서울올림픽 때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보려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택시를 많이 탈거란 이유에서 갓등을 규격화했다는 겁니다. 이후에는 도시 경관 측면도 고려됐다고 하는데요.

 요즘 택시 갓등이 서울 시내 택시업계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고급택시'로 인가된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 등이 서울시에 갓등 허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갓등을 달고 호출(콜)이 적은 시간대에는 배회영업(길 다니다 승객 태우기)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급택시는 대부분 서울에서 영업 중입니다.

 참고로 국내 택시면허는 ▶중형택시 ▶모범택시 ▶대형택시 ▶고급택시로 나뉩니다. 중형과 모범택시는 요금이 지자체 인가 대상이며 콜영업과 배회영업이 모두 가능합니다. 반면 대형택시는 배기량 2000cc 이상 승용자동차(10인승 이하)는 콜 영업만 허용되며, 11~13인승의 승합자동차는 자율요금에 콜영업과 배회영업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대형면허인 아이엠택시는 갓등을 달고 콜 영업과 배회 영업이 모두 가능하다. 중앙일보

대형면허인 아이엠택시는 갓등을 달고 콜 영업과 배회 영업이 모두 가능하다. 중앙일보

 자율요금에 콜·배회영업 모두 가능한 대형택시는 진모빌리티가 운영하는 아이엠(I.M) 택시가 대표적인데요.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에 900여대가 운행 중입니다. 반면 콜영업만 할 수 있는 대형택시로는 카카오 벤티(약 500대) 등이 있습니다.

 2800cc 이상 7~9인승 승용자동차를 대상으로 하는 고급택시는 2500대가량으로 카카오 벤티와 카카오 블랙, 타다 넥스트 등이 있는데요. 이 가운데 카카오 벤티는 1000여대, 타다 넥스트는 700여대가 운행 중입니다.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는 70~80%가량이 개인택시 면허를 기반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 중 카카오 벤티는 대형택시와 고급택시가 섞여 있습니다.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를 각각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와 VCNC 측은 “면허가 대형과 고급으로 나뉘어 있을 뿐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 아이엠택시는 카니발 등 거의 같은 차종을 운영하고 있다”며 “아이엠택시는 갓등을 달고 배회영업도 가능한데, 고급면허로 운영하는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는 콜영업만 허용하는 건 차별적 대우”라고 주장합니다.

카카오 벤티는 대형과 고급 면허가 섞여 있고 갓등도 없다. 연합뉴스

카카오 벤티는 대형과 고급 면허가 섞여 있고 갓등도 없다. 연합뉴스

 사실 고급면허를 가진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는 지금도 현행법상 갓등을 달 수는 있습니다. 고급택시는 갓등 설치가 자율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배회영업 허용 여부입니다. 갓등을 달아 택시임을 더 명확히 하더라도 배회영업이 막히면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들 업계에선 관련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배회영업을 막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고급택시는 예약전용, 그러니까 콜 영업만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손형권 서울시 택시정책과장은 “지난 2015년 고급택시가 처음 도입될 당시 기존 택시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가 있었다”며 “배회영업을 원한다면 면허를 대형으로 바꾸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카카오 벤티는 고급과 대형면허가 섞여 있는 탓에 구분이 어려워 대형만 떼어내 배회영업을 허용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타다 넥스트는 모두 고급 면허로 배회 영업이 금지돼 있다. 연합뉴스

타다 넥스트는 모두 고급 면허로 배회 영업이 금지돼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국토교통부의 '택시제도 운영기준에 관한 업무처리요령' 제3조에 있는 “관할관청은 택시운송사업의 건전한 육성 및 서비스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항은 관련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고급택시의 배회영업을 금지할 수 있다고 서울시는 설명합니다.

 이렇게 보면 고급택시인 카카오 벤티와 타다 넥스트의 갓등 설치와 배회영업이 당분간 허용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승객 편의 증진과 해당 택시기사들의 수입 증대 등 여러 긍정적 효과를 고루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양측이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은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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