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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지자체 추진 트램 26개나 …“지금 왜 필요?” 답부터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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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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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우리나라에 현대식 트램의 전신인 노면전차가 처음 등장한 건 무려 124년 전인 1899년 대한제국 때다. 그해 5월 서울 서대문~청량리 구간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아시아 국가 중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노면전차를 도입한 나라였다. 이후 서울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노선이 여럿 연결됐고, 평양과 부산에도 노면전차가 다니게 됐다.

노면전차는 1960년대 중반까지 꽤 유용한 서민의 발이었다. 1962년 기준으로 여객 수송분담률이 33.8%로 버스(57.7%)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자동차가 점차 보급되고 노선버스가 늘어나면서 노면전차가 설 자리는 계속 좁아졌다. 노면전차가 도로 위로 다니는 탓에 승용차와 버스의 통행에 지장을 준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노면전차는 첫 운행을 시작한 지 69년 만인 1968년에 사라졌다.

서울·경기·부산·대전 등서 계획
실제 착공한 건 위례 한 곳 그쳐
사업비 급증, 전기버스와 경쟁
트램의 경쟁력 꼼꼼히 따져야

1899년 첫선, 1968년 사라진 전차

울산시가 도입하려는 수소전기트램 디자인. 울산 트램은 지난 8월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울산시가 도입하려는 수소전기트램 디자인. 울산 트램은 지난 8월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요즘 노면전차의 맥을 잇는 ‘트램(Tram)’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서울·인천·경기·대전·울산·부산·경남 등 국내 지자체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트램만 26개 노선에 연장은 416㎞에 달한다. 이미 유럽과 미국, 호주 등에선 트램의 인기가 상당하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기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80여 도시에서 트램을 운영 중이며 노선만 2300개가 넘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트램이 곳곳에서 추진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지난 1일 열린 ‘경기도 트램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박경철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트램 활성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발제 자료를 보면 26개 노선 가운데 공사를 시작한 곳은 서울의 위례 트램 하나뿐이다. 올해 4월에 착공식을 가졌으며 2025년 9월께 개통 예정이다. 또 울산의 트램 1호선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 이어 지난 8월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해 사업 추진의 힘든 고비를 넘겼다.

반면 난관에 부딪힌 노선이 많다. 예타가 면제된 대전 트램은 지장물(사업시행에 방해되는 물건이나 장치) 이설비 등 사업비가 급증해 논란이다. 당초 7492억원이던 사업비가 1조4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트램 실증 사업으로 선정됐던 부산 오륙도선 역시 총사업비가 470억원에서 906억원으로 증가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수원시가 추진한 트램은 2017년 예타에서 탈락했다. 노선 타당성을 재검토하거나, 예타 통과가 어려워 아예 국비 지원을 포기하고 자체 사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국내의 여러 트램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건 왜일까. 박경철 위원은 “지금처럼 왕복 8차로 이상의 넓은 도로에 광역철도에 버금가는 길이의 트램을 놓으려고 해서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6차로 이내 도로, 연장 10㎞ 안팎 등 트램에 적합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운행 중인 전기굴절버스. 강갑생 기자

세종시에서 운행 중인 전기굴절버스. 강갑생 기자

정우현 한국개발연구원 예비타당성조사 1팀장은 “지자체가 트램을 도입하려면 가로 정비와 보행 기능 향상, 도시재생 방안은 물론 트램과 중복되는 버스 노선 체계 개편안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트램 설계 규모가 대체로 과도한 데다 트램 도입을 위한 체계적인 분석과 실행 방안 마련 등 관련 준비가 미흡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보다 근본적으로 트램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흔히 트램의 장점으로는 자가용이나 버스보다 훨씬 큰 대량 수송력을 꼽는다. 5모듈(량) 1편성으로 구성된 트램은 입석을 포함해서 승객 250명가량을 실어나를 수 있다.

장점은 더 있다. 곽재호 철기연 본부장은 “트램은 배터리나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인 데다 독립된 선로를 이용하면 지하철 못지않은 정시성 확보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세련된 디자인의 트램으로 도시 경관을 바꾸고, 관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트램의 장점이 전기굴절버스와 2층 전기버스 등으로 인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우선 이들 버스는 모두 기존 내연기관 대신 전기 모터로 달리기 때문에 배기가스를 거의 내뿜지 않아 트램 못지않게 친환경적이다. 또 1회 수송 가능 인원은 트램에 비해 적지만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덕분에 훨씬 많은 차량을 투입할 수 있다.

트램 1편성당 40억원, 가격 부담

트램은 가격이 1편성당 40억원이 넘지만 전기굴절버스는 9억~10억원, 2층 전기버스는 8억원가량 된다. 트램 하나 가격이면 전기굴절버스는 4대, 2층 전기버스는 5대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버스 2대를 이어붙인 형태의 전기굴절버스는 입석을 포함해 한 번에 90명 정도 탈 수 있고, 2층 전기버스는 70명 정도 된다. 동일한 시간 내에 트램이 한 편성 다닐 때 전기굴절버스는 4대, 2층 전기버스는 5대까지 촘촘하게 투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경우 전기굴절버스의 총수송력은 360명, 2층 전기버스는 350명이나 돼 트램보다 오히려 많아진다.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면 전기굴절버스와 2층 전기버스 역시 일정 수준의 정시성 확보가 가능하다. 여기에 전용 신호와 입체 교차로 등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의 핵심 요소들이 더해지면 정시운행이 더 강화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버스는 기존 도로의 용량을 감소시키는 트램과 달리 다른 버스나 승용차, 택시 등 기존 교통수단과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거의 없다. 디자인도 나쁘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비교 요소를 고려하면 그동안 트램이 내세웠던 장점이 더는 독보적인 수준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트램을 도입하려면 그 전에 “왜 꼭 트램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