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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아킬레스건 6500명에 심었다…대리수술까지 시킨 의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월 17일, 수술실 망년회 예정입니다. 작년처럼 찬조금 부탁드립니다(성의껏)”

의사 A씨가 환자 이식용 아킬레스건 등의 인체조직을 유통하는 업체 영업사원에게 보낸 메시지다. A씨는 이 업체로부터 정상 크기 아킬레스건을 반으로 자른 ‘반쪽 아킬레스건’을 납품 받아 십자인대 파열 환자 수술 등에 사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승인도 받지 않은 인체조직을 환자 몰래 몸안에 이식한 것이다. A씨 병원 만이 아니었다. 경찰 수사 결과, 대형병원 등 400여곳에서 7년간 이처럼 반쪽 아킬레스건을 납품 받아 수술한 환자가 6500여명에 달했다. 또 관련 업체 영업사원이나 응급구조사 등에게 수술 준비 및 수술 등을 대신 시키거나, 리베이트 등을 받은 의사들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의료진이 유통업체 영업직원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의료진이 유통업체 영업직원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온전한 아킬레스건을 수입·납품한 것처럼 당국을 속이고 실제로는 반쪽 아킬레스건을 유통 시켜 요양급여 100억원을 편취한 인체조직업체 관계자 32명과 이를 납품 받고 환자 몸에 직접 이식하거나 대리수술 등에 관여한 의사 30명, 간호사 22명 등 총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들에겐 인체조직법 위반, 의료법과 의료기기법 위반,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배임 수증 혐의 등이 적용됐다.

경찰에 따르면 적발된 인체조직 수입·유통업체 대표 26명은 2012년 3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식약처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 6770개를 수입해 전국 400여 병·의원에 납품했다. 식약처가 승인한 온전한 아킬레스건을 수입한 것처럼 꾸며 들여오고,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약 100억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부당 수령하기도 했다. 온전한 아킬레스건을 반으로 자른 2개의 반쪽 아킬레스건으로 수입하면, 각각에 대해 급여를 신청할 수 있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예를 들어 80만원 짜리 아킬레스건 하나를 수입해와 100만원의 급여를 신청하는 것보다, 50만원짜리 반쪽 아킬레스건 두개를 들여와 각각 100만원씩 급여를 신청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다.

환자 개인정보를 주고받고 이를 활용해 자격이 없이 수술에 관여한 영업사원, 그리고 이들에게 환자의 대리수술을 하도록 한 의사와 간호사 역시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납품 업체 선정 대가로 유통업체가 제공한 1500만원 상당의 수술장비를 185회 가량 무상 사용하기도 했고, 회식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받거나 병원 집기 구매 비용을 업체에 떠넘기기도 했다. 다만 이들 의료진이 납품 받은 아킬레스건이 ‘반쪽짜리 미승인 아킬레스건’인 사실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환자 이식 수술에 고의로 사용했는지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수술도구 등 관련 증거물.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수술도구 등 관련 증거물. 사진 서울경찰청

이들이 유통 시킨 미승인 아킬레스건은 주로 끊어진 전방 십자인대 수술시 이식 재료로 사용되며, 사망한 이들로부터 기증 받는다.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인체조직 은행들이 주로 미국의 인체조직업체로부터 수입해 오며, 납품업체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82만원이고 정상 조직의 경우 식약처에서 개당 148만원의 요양급여를 지급한다. 경찰은 지난해 2월 건강보험공단 의뢰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결과 반쪽 아킬레스건을 52만원에 들여와 82만원에 판매하고, 요양급여는 온전한 제품과 마찬가지로 148만원씩을 신청한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 수사에 적발된 수입업체는 식약처의 승인을 받은 상품명(완전한 아킬레스건)으로 국내에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했는데, 내용물을 확인하더라도 냉동 포장상태로 수입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구별이 힘들다는 점을 노리고 보건 당국을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술 받는 환자의 체격 등에 맞춰 아킬레스건 조직을 일정 부분 잘라서 수술에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일부 의사들이나 환자들 역시 이를 알아 차리기는 어렵다는 점도 악용했다. 수사 과정에선 영업사원들이 비위생적인 차량에 각종 수술 도구를 싣고 다니며 아킬레스건 조직을 다듬고, 이를 병원으로 가져와 의사·간호사 대신 응급구조사 등이 대리 수술을 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영업사원이 차량에 수술도구를 비위생적으로 보관한 모습.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영업사원이 차량에 수술도구를 비위생적으로 보관한 모습.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의료진이 영업사원에게 대리 수술 등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 사진 서울경찰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승인을 받지 않은 '반쪽 아킬레스건'을 수입해 병·의원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100억원 상당 요양급여를 편취하는데 관여한 인체조직 수입업체 관계자와 의료진 등 8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은 의료진이 영업사원에게 대리 수술 등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 사진 서울경찰청

경찰은 식약처에 인체조직 수입시 실사 등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한 상태다. 또 반쪽 아킬레스건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명단 등을 식약처에 넘겨 후속 조치가 이뤄지도록 했다. 다만 경찰은 수사 대상기간 이후인 2019년 5월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아킬레스건 조직 수급이 안정돼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반쪽 아킬레스건 수입‧납품 업체 및 의사 등을 추가 확인해 지속적인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승인받지 않은 인체조직을 수입‧납품하거나, 업체 선정을 위해 경제적 이익을 요구‧제공하는 행위를 목격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 신고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장된다”고 당부했다.

한편 건보공단은 부당하게 지급된 요양급여를 환수하기 위해 수사가 끝난 인체조직 유통 업체에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식약처 관계자는 “환자들 모르게 미승인 인체조직을 수술에 이용해 몸에 이식했다면 추후에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수사 결과를 살펴보고 역학조사와 당사자 통보, 업체 제재 등의 조치가 필요한지 내부적으로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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