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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죽음 부른 브로커 수사…광주 정·관·경이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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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 치안감 극단선택

지난 14일 오후 5시33분쯤 서울 강동경찰서에 “남편이 등산을 간 뒤 연락이 끊겼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당시 실종자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실종자가 전남경찰청장과 강원경찰청장 등을 지낸 김모(61) 전 치안감으로 확인돼서다. 경찰은 즉각 김씨를 찾아 나섰다.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일대를 수색했다.

경찰은 밤샘 수색 끝에 이튿날 오전 10시11분쯤 검단산 중턱 유길준(조선 말기 개화사상가) 묘 근처에서 김씨를 찾았다.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 당시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검찰이 수사 중인 ‘브로커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었다. 김씨는 경찰대 2기로 광주경찰청 1부장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 강원경찰청장 등 요직을 역임하고 전남경찰청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김씨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경찰청 간부는 “충격적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광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에 광주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 관계자는 “결국 터질 게 터졌다”고 말했다.

문제의 브로커 사건은 지난 8월 4일 수면 위로 드러났다.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가 사건 브로커 성모(62)씨 등 2명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게 시작이었다. 검찰은 광주·전남에서 브로커로 활동해 온 성씨의 각종 비리 의혹을 지난해 9월부터 캐 온 상태였다.

보행 데크 설치업자로 알려진 성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현직 경찰 고위직들과 인맥을 과시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승진하려면 성씨에게 줄을 대야 한다”는 건 경찰관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특히 주변에선 “성씨가 총경급 이상 간부 수십 명을 관리하고 있다는 말을 자랑스레 늘어놓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경찰 내부에선 “성씨와 함께 술을 먹고, 골프를 쳤던 경찰 간부들은 불안불안할 것”이란 말이 퍼졌다.

검찰은 그가 경찰만이 아닌, 광주·전남 지자체와 정·관계 인사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경무관 구속, 전·현 치안감급 둘 수사…판도라상자 열리나

성씨가 전남 지역 기초단체장 3~4명의 선거법 위반 수사에도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한다. 당초 성씨 등은 가상화폐(코인) 투자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탁모(44)씨에게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18억54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탁씨의 사기 관련 피해금은 광주경찰청에서 맡은 사건만 28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검찰은 성씨가 2020~2021년 사이 탁씨에게 벤츠 자동차와 현금·코인 등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검찰은 성씨로부터 가상화폐 사기는 물론 전방위적인 로비 혐의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른바 ‘전공 분야’인 사건무마 로비 외에도 경찰 인사 개입과 지자체 관급공사 수주 비리, 정치인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검찰은 당초 사기사건의 검경 로비 의혹을 겨누다 경찰 ‘몸통’ 쪽으로 향했다. 검찰 안팎에선 “전·현직 경찰은 물론이고 브로커 성씨와 연락이 잦았던 정·관계 인사가 200~300여 명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우선 지난달 19일 광주지검 목포지청 소속 수사관(5급) A씨를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했다. 성씨에게 금품을 받고 전남 지역 단체장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다. 검찰은 A씨와 공모한 혐의로 지난 1일 광주지검 소속 수사관(6급) B씨를 직위 해제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관 구속을 시작으로 검찰은 경찰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섰다. 광주지검은 지난달 10일 전남 목포경찰서를 시작으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검찰 수사는 지난 10일 광주경찰 핵심 간부들을 겨냥했다. 이날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광주북부경찰서, 광산경찰서 첨단지구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지난 9일 성씨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전직 경무관을 구속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일에는 3~4년 전 전남경찰청에서 근무했던 전직 경감이 구속됐다.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연루 혐의를 받는 경찰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인물은 숨진 김씨 외에도 전·현직 치안감급 2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직 총경급 4~9명도 로비 대상에 포함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경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전남경찰청 인사고과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경찰 안팎에선 당시 김씨가 전남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당시였다는 점에서 인사 비리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광주지방검찰청은 사망한 김씨에 대해 “최근 입건자로 신분이 전환됐으나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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