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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몇천 명을 버스로? 빽도는 없다"…장제원 "할말은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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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던 장제원 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회견하는 모습. 장 의원은 최근 인요한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험지 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던 장제원 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회견하는 모습. 장 의원은 최근 인요한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험지 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또다시 정치적 고비를 맞았다. 지도부·중진·친윤을 상대로 내년 4·10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압박을 가하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그를 정조준하고 있어서다.

지난 3일 혁신위 권고 이후 열흘이 넘도록 호응하는 인사가 없자 인 위원장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3일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라며 ‘매를 들겠다’는 표현을 쓴 데 이어 14일엔 “매는 여론이고 여론은 국민이다. 그 매는 (총선 때) 국민의 투표로 이어진다”며 선거 책임론까지 꺼냈다. 그러면서 “시간을 좀 주면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100%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 위원장은 최근 타깃을 좁힌 모양새다. 1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후회는 하나도 없다. 몇천 명을 버스로 동원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라고 말하며 장 의원을 직격한 것이다. 장 의원은 지난 11일 지역구(부산 사상) 외곽 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페이스북에 “버스 92대 4200여 회원이 운집했다”는 글과 함께 버스에서 내려 줄지어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지지자 사진까지 올렸다. 행사장에선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인 위원장의 압박에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인 위원장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그는 “아내가 ‘후퇴는 하지 말라’고 했다. 윷놀이에서 빠꾸도(빽도)는 없다”라고도 했다.

정치권에선 “장 의원이 여권 실세가 된 이후 세 번째 고비를 맞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2021년 9월 대선 경선 때 아들 문제가 불거지자 캠프 종합상황실장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8월엔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 논란이 불거진 뒤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2선 후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정치적 고비와 달리 이번엔 국회의원 공천 문제와 직결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친윤 그룹이 생겨난 뒤 장 의원은 여권의 문제적 인물로 통했다. 권성동·윤한홍 의원 등 이른바 ‘원조 윤핵관’ 중에서도 스타일이 거침없는 편이라 늘 주목을 받았고, 반대급부로 내부의 적도 많다는 평가였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자신의 외곽 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모습. 장 의원은 행사 뒤 페이스북에 “버스 92대 4200여 회원이 운집했다”고 썼다. 장 의원 페이스북 캡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자신의 외곽 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모습. 장 의원은 행사 뒤 페이스북에 “버스 92대 4200여 회원이 운집했다”고 썼다. 장 의원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서 장 의원은 그간 일등공신이었다. 대선 막판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고, 올해 3·8 전당대회 때는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를 통해 지지율 3%였던 김기현 대표를 당선시켰다. 그 과정에서 유력 당권 주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을 “반윤 우두머리”라고 직격해 주저앉히는 등 악역을 자처했다.

장 의원 본인도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지난해 여름 친윤 모임 ‘민들레’가 당 안팎의 비판을 받자 그는 주변에 “국민의힘을 철저하게 ‘윤석열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을 보호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 장 의원의 평소 입장은 “대통령을 사랑하면 험지에 나가라”는 인 위원장의 발언과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던 장 의원 입장에서 ‘대통령을 위해 결단하라’는 인 위원장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마땅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인요한 위원장의 말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란 게 여권 내 시각이다. 하태경 의원도 14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혁신위의 권고를 당에서는 ‘대통령의 메시지’ 이해하고 있다”며 “장 의원의 수도권 험지 출마 거부 때문에 윤 대통령이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험지 출마론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주변에 “내가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이렇게는 못 나간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혁신위 출범 전부터 여권에선 “총선이 다가오면 장 의원이 불출마 결심을 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자의에 의해 ‘멋있게’ 할 수도 있는 일을 인 위원장의 압박으로 ‘스타일 구기며’ 떠밀리는 듯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장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교회 간증 영상에선 “정치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겪고 풍파도 있었다. 요즘은 ‘장제원, 험지에 출마하라’고 한다”며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이자 동서대 설립자인 부친의 일화를 말하는 대목에선 “저는 눈치를 안 보고, 할 말 하고 산다”며 “아무리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할 말을 하고 산다. 그래서 역풍도 맞지만”이라는 말도 했다.

당내에선 장 의원이 당장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여권 관계자는 “본인 정치 인생이 달린 문제라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장 의원을 너무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인요한 “독약 발언 안 해”=한편 인요한 위원장이 친윤계 험지 출마 문제와 관련해 “독약을 쓰겠다”며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는 뜻을 최근 주변에 말했다는 본지 기사와 관련, 인 위원장은 14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게는 독약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독약’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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