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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상관없이 야근 척척…3분 카레 만드는 신입직원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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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카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카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지난 7일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HD현대일렉트릭의 변압기 공장. 두꺼운 철문을 열고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로봇 팔처럼 생긴 ‘핸들러’(Handler‧철판을 흡착하고 이동시켜 쌓아 올리는 기계 팔)가 5초 간격으로 움직이며 사다리꼴 모양의 전기강판(실리콘 스틸)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이 회사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상무는 “변압기 생산공정 중 첫 단계인 철심 구조물을 만드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 중인 변압기 앞 키오스크를 통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HD현대일렉트릭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 중인 변압기 앞 키오스크를 통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HD현대일렉트릭

여기서 핵심은 정밀함이다. 철심 하나의 두께는 불과 0.23~0.3㎜에 불과하다. 이를 적게는 2000장, 최대 1만 장까지 오차 없이 쌓아 올려야 한다. 이렇게 얇디얇은 시트 적층을 위해선 그동안 4~6명의 작업자가 일일이 철심을 쌓아야 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 이후엔 필요 인력이 1.5명으로 줄었다. 강진호 변압기생산부 책임은 “사람이 하면 밤낮으로 일주일 걸리는 작업시간을 나흘 정도로 줄였다”며 “(로봇은) 야간작업도 가능해 생산 효율이 더 올랐다”고 설명했다.

300t이 넘는 육중한 변압기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도 로봇의 일종인 ‘에어쿠션’을 이용한다. 이곳에선 로봇 설비와 새로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생산성이 20% 높아지고, 불량률은 90% 줄었다.

지난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 변압기 공장에서 작업자 2명이 철심자동적층설비 공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HD현대일렉트릭

지난 7일 울산 동구 HD현대일렉트릭 스마트 변압기 공장에서 작업자 2명이 철심자동적층설비 공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 HD현대일렉트릭

이처럼 산업 현장 곳곳에 로봇이 도입되면서 생산성 향상과 인력난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지방과 제조업 분야를 중심으로 ‘로봇 채용’ 움직임이 활발하다. 요컨대 ‘구인난 해결사’인 셈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최근 3년간 선도 사업을 통해 자동차·전기전자·섬유 등 업종의 352개사에 로봇 716대를 투입했더니 생산성은 60.4% 향상되고, 불량률은 58.7% 감소했다. 김수영 호서대 스마트팩토리기술경영학과 교수는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면 생산성을 20~70%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도 커지고 있다. 14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332억 달러(약 44조1000억원)에서 2026년 741억 달러(약 98조5000억원)로 연평균 17.4% 성장할 전망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충북 음성에 있는 오뚜기 대풍공장도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구인난을 해소하고, 생산 효율을 높인 대표적인 현장이다. 이곳에선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케첩·마요네즈·카레 등을 포함해 452개 품목을 연간 25만t 규모로 생산한다. 지난해에만 8641억원어치를 생산했고, 올해는 여기서 1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일 현장을 찾아보니 다양한 로봇들이 ‘3분 카레’ ‘3분 짜장’ 같은 이 회사의 대표 제품을 쉴새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빈 봉지에 카레를 넣고 밀봉한 후 이동·살균·포장하는 주요 공정이 로봇의 몫이었다.

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마요네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마요네즈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김혁 대풍공장장은 “과거 케첩이나 마요네즈를 한 번에 여러 개 잡아 박스에 넣는 ‘달인’ 같은 작업자가 있었다면 지금은 로봇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며 “생산 인력도 줄었다. 한때 60여 명이 일하던 케첩 공정에 이제는 절반 정도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음성에서만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통근버스를 운영하면서 인근 지역에서 계속 채용을 해왔는데, 이런 충원 부담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외식 업계도 서빙·조리 등 서비스용 로봇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교촌에프앤비는 두산로보틱스와 ‘치킨로봇 솔루션 확산’ 업무협약을 맺고 매장 효율화에 나섰다. 시간당 최대 24마리의 닭을 튀길 수 있어 생산성이 높고, 기름 교체와 바닥 청소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내년 1월부터 주방 자동화 로봇 ‘알파그릴’을 순차 도입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에 따라 패티 조리 시간이 5분→1분50초로 줄어든다. 단순 작업을 축소해 구인난 해결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돈까스 소스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충북 음성군 오뚜기 대풍공장에서 돈까스 소스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오뚜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단순 작업을 대체하는 것 이상으로 로봇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수 성균관대 스마트팩토리융합학과 교수는 “당장 로봇이 단순·반복 업무를 맡은 인력을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고급 인력은 더 많이 고용해야 한다”며 “섬세한 아날로그 기술 구현을 통해 제조업의 본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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