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벅은 양쪽에서 욕먹는다…CEO도 날려버린 이·팔 불매운동

중앙일보

입력

중동 바레인에 사는 한 10대 소녀는 요즘 쇼핑을 할 때마다 태블릿PC로 꼭 확인하는 게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지지한 글로벌 기업들의 목록이다. 소녀는 AFP통신에 "이스라엘 편에 선 브랜드의 제품들은 사지 않고 거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친(親)이스라엘 기업 보이콧' 현상은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이 외우내환에 휩싸였다. 이번 사태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중 한 편에 지지의 뜻을  표명을 한 기업들은 반대 진영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회사 조직 내에선 이스라엘 지지자들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대립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앞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앞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지지' 200곳...반응은 우크라전과 달라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제프리 소넨필드 교수의 실시간 집계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기준 지금까지 하마스의 공격을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힌 기업은 아마존·애플·스타벅스·샤넬·디즈니·넷플릭스·구글·화이자 등 200곳이 넘는다. 기업 조사업체 그래비티 리서치의 조사 결과 이스라엘이 공격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한 기업도 50곳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들의 입장 표명은 국제적, 사회적 대형 이슈에 침묵하기 힘든 분위기의 영향이다. 2000년대 소셜미디어가 확산하면서 기업이 사회 문제에 동참하는 이른바 '기업 행동주의(company activism)'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은 그러나 지난해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당시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러시아에서 사업을 철수했거나 축소한 기업이 1000여 곳에 달했다. 반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납치로 시작됐으나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여론은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의 처신에도 위험 부담이 뒤따르게 됐다.

쿠웨이트의 도로에 내걸린 친이스라엘 기업 보이콧 캠페인 광고.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쿠웨이트의 도로에 내걸린 친이스라엘 기업 보이콧 캠페인 광고.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튀르키예, 코카콜라 퇴출...스벅은 양쪽서 '불매운동'   

전쟁 초반 이스라엘에 지지 의사를 밝혔던 글로벌 기업들은 불매운동에 직면했다. 튀르키예 의회는 지난 7일 이스라엘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 코카콜라와 스위스 기업 네슬레의 제품을 의회 식당·카페에서 퇴출했다. 의회는 "이들 기업에 대한 대중의 불매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국가 차원에서 친이스라엘 기업을 겨냥한 최초의 조치라고 전했다.

카타르 도하에선 이스라엘을 지지한 프랑스의 한 제빵 브랜드 매장이 최근 문을 닫았고, 말레이시아 등 여러 중동 국가에선 이스라엘군에 음식을 무료로 제공했던 맥도날드가 불매 운동 대상이 됐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쿠웨이트의 한 고속도로 인근엔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사진과 함께 '오늘 당신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였는가?'란 문구가 적힌 대형 광고판이 등장했다.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보이콧 촉구 캠페인의 일환이다.

반대로 이스라엘 지지 진영으로부터 불매운동을 겪는 기업들도 있다. 아일랜드에 있는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한 매장은 '이스라엘 보이콧' 글귀를 창문에 붙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쉬 브랜드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다. 유럽 최대 정보통신(IT) 콘퍼런스 주최사인 웹서밋 최고경영자(CEO) 패디 코스그레이브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했다가 빅테크 기업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사임했다.

세계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친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양 진영으로부터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지난달 스타벅스 노조는 소셜미디어에 팔레스타인 지지 게시물을 올렸고 이에 대한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사측은 노조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냈다. 유대인 단체들과 미 정치권에선 노조의 지지 게시물을 문제 삼고, 중동 지역에선 노조를 고소한 사측 조치에 반발해 각각 보이콧을 촉구하고 나섰다.

아일랜드에 있는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한 매장 창문에 '이스라엘 보이콧' 글귀가 붙어 있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아일랜드에 있는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한 매장 창문에 '이스라엘 보이콧' 글귀가 붙어 있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이스라엘과 사업 하지마"...반유대 게시물에 해고도  

이번 전쟁은 글로벌 기업 내 구성원의 갈등으로도 비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구글과 아마존의 일부 직원들은 이스라엘을 공개 지지한 사측에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한 구글과 아마존이 참여하기로 한 이스라엘 정부와의 사업 계약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의 일부 직원은 사내 게시판에 올린 팔레스타인 지지 글이 삭제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구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구글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전쟁과 관련된 직원 해고, 사직도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항공사 에어캐나다는 소셜미디어에 반유대 게시물을 올린 한 조종사를 해고했고, 미 뉴욕의 한 로펌도 유사한 이유로 로스쿨 재학생의 채용을 취소했다. 뉴욕타임스(NYT)의 한 기자는 이스라엘 비판 선언문에 이름을 올렸다가 사측의 지적을 받고 사직했고, BBC의 한 기자는 BBC가 하마스를 '테러조직'이라고 부르지 않는 데 반발해 퇴사했다.

이런 현상과 관련 벨기에 겐트대의 기업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안소피 클레이스는 유로뉴스에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평판에 흠집을 내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깊이 고려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불매운동이 활발한 국가 내에서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집트 상공회의소는 자국 내 친이스라엘 기업 불매운동에 대한 성명에서 "결국 수만 명의 이집트 근로자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