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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수출? 자랑할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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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밤하늘에 별들이 또렷하다. 어느 순간 가을이 깊어졌다. 건조한 공기 덕에 모든 사물이 세밀하게 다가온다. 참선 수행을 위해 찾아온 열여덟 수행자와 새벽 좌선을 마치고 선방에서 내려오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에 눈썹처럼 가는 하현달과 어우러진 작고 밝은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하다. 수행 도반들의 마음도, 모든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바라거나 질투하는 감정이 사라지면 지혜의 눈이 생겨난다.

나뭇잎이 모두 땅으로 내려앉았다. 가지에 매달렸을 땐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파리들이 땅 위에서 만나 부둥켜안으며 그리움을 풀고 있다. 얼마 전 산길을 걷다가 길을 잃어 산속을 헤매던 사람들이 있어, 걱정하며 숲으로 향했다. 일찍 일어난 상좌가 숲길을 속살이 보이도록 쓸어 놓았다. 작은 행동에 훌륭한 스승의 모습이 보인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늦가을
우크라·이스라엘의 전쟁 소식
혼란 틈에서 무기 파는 사람들
평화 향한 마음 더 단단히 죄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보의 낙엽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전쟁 소식과 정쟁 뉴스, 음식 프로와 쇼핑몰, 건강식품과 스포츠 경기와 노래자랑이 시선을 빼앗는다. 두세 살 아이부터 어른까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시대다. 인류의 모든 장점을 모아 가장 행복하고 가장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충분조건이 갖춰져 있다. 내 삶의 숲길도 매일 매일 앞길이 보이고, 맨살이 드러나도록 쓸어야 한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현조 스님이 찾아왔다. “존자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런 어른이 오래오래 계시면서 인류의 방향을 가르쳐 주셔야 하는데요. 요즘 어떤 말씀을 자주 하시나요.” 갈증에 폭풍 질문을 던졌다. “전쟁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특히 무기 경쟁과 판매를 부끄러움 없이 노출하는 건 큰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어 최근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으로 국제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도 이 혼란을 절호의 기회라며 활용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행위이다. 전쟁과 무기개발은 인류와 환경을 한순간에 파괴하는 극악의 무지에서 나타난다.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멈추도록 권하거나 비판해야지 남 일인 양 외면해서는 안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이 살상무기를 개발해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두 달째 접어드는 사이 독일은 떼돈을 벌었다. 작년보다 10배 수익을 내었는데, 무기와 군사장비를 3억 유로(약 4210억원) 넘게 이스라엘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F-15 전투기나 다연장로켓,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일부 부품만을 수출했는데, 미국과 라이선스를 맺고 완제품 무기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정전 70주년을 맞은 한반도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월부터 포탄 100만발 등 무기를 10여 차례 러시아에 반출했고, 10월 중순 방사포 전문가들을 러시아로 파견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키부츠 기습 때 사용된 북한산 대전차 로켓포 RPG-7, 수류탄, 폭발물, 박격포가 각 1000기, 급조폭발장치(IED), AK-47 소총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남한은 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전쟁 중인 중동 지역에서 ‘대한민국 제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무기 세일즈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작년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인 173억불 방산수출 실적을 달성했다’며 자랑하고 있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폴란드에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 다연장 로켓 등 지난해 124억원 계약, 올해는 220억원 규모의 계약예정이라며 으쓱거리기까지 한다.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는 엄청난 무기가 배치되어 있고, 앞으로도 극악한 무기가 생산될 지구상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무기를 만들고 보유하는 것은 방어의 마음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공격과 파괴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라면 한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나 정치, 문화와 일상의 언어들의 중심에도 그런 마음이 담기게 된다. 개개인이 겪고 있는 대립, 갈등, 좌절로 인한 우울증이나 자살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초겨울은 나무들이 화려한 이파리들은 떨구고 그 뿌리와 줄기를 단단하게 단속하는 시기이다. 우리 역시 마음과 행동을 단속해야 한다. 하여, 무기개발로 일확천금을 번다는 따위의 위정자들의 화려한 언사에 속지 않아야 한다. 평화를 원하는 마음을 더 단단히 하고, 그 마음을 널리 확산시킬 때 행복한 세상이 이루어진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