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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연마만 하는 '헛똑똑 韓AI'…'AI전쟁 시즌2' 英·獨에 배워라 [AI 전쟁 시즌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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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도서관(The British Library) 내부에 위치한 '앨런 튜링 연구소(The Alan Turing Institute)'의 모습. 윤상언 기자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도서관(The British Library) 내부에 위치한 '앨런 튜링 연구소(The Alan Turing Institute)'의 모습. 윤상언 기자

전 세계가 2차 인공지능(AI) 전쟁을 시작했다. AI 기술과 이에 필요한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의 패권 다툼이 1차 전쟁이라면, 이제는 AI로 산업을 혁신하고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2차전이다.

AI 주도 국가인 미국은 AI 기술 격차를 통해 안보와 제조업이란 두마리 토끼를 노린다. 지난 8월 시행한 반도체산업육성법은 그 시작이다. 미국 내 반도체 투자·설비에 세금을 감면하는 이 법으로 2100억 달러(약 272조원)의 민간 투자와 4만4000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중국은 자국 내 반도체·AI 기업 간 협업으로 미국의 봉쇄를 뚫는 모양새다. 화웨이는 바이두로부터 800억원 어치 AI 반도체 물량을 수주했고, 민간 AI 기업들은 정부의 묵인하에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활용해 AI 기술을 축적했다. 그 기술로 중국 정부는 교통·제조·의료 등 국가 인프라 전반의 혁신을 노린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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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떤가. AI의 양 날개 중 하나인 반도체는 G2의 기술 전쟁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지 오래다. 챗GPT 같은 서비스의 기반이 될 거대언어모델(LLM)을 자체 개발한 한국 기업만 6곳(네이버·LG·SKT·KT·카카오·엔씨소프트)이지만, LLM에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미·중 빅테크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기술 연마만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 가운데 세계 각국은 AI 기술 개발을 넘어, AI로 주력 산업을 혁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AI와 자국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서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본 것이다. 독일은 AI를 제조업 혁신과 기후·에너지 문제 해결에 쓴다. 마리오 브란덴부르크 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차관은 중앙일보에 “독일 경제구조에 맞는 우리의 과제는 제조업을 AI로 혁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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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주요 도시 7곳에 AI 연구센터(DFKI)를 뒀다. 각 지역 뿌리 산업을 이끄는 ‘히든챔피언’ 강소 기업들에 기술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반도체·제조업 도시 드레스덴은 AI로 제조업을 혁신하고, 물류 도시 도르트문트은 물류 로봇과 AI를 융합하며, 보건 의료산업이 발달한 뮌헨은 헬스케어 AI를 연구하는 식이다. 현재 7곳의 DFKI가 독일 기업과 300개 이상의 AI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클라우스 로베르트 뮐러 베를린대 공대 교수는 지난달 5일 중앙일보와 만나 “기후 위기 상황에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장치를 어떻게 더 효율화할지를 AI로 풀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AI연구소인 베를린학습데이터기초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클라우스 로베르트 뮐러 베를린 공대 교수. 여성국 기자

클라우스 로베르트 뮐러 베를린 공대 교수. 여성국 기자

글로벌 제약사를 다수 배출한 영국에선 바이오제약 산업에서 AI 응용이 활발하다. 지난달 19일 찾은 케임브리지대 의대 밀너제약연구소에선 글로벌 제약사와 AI를 활용한 공동 연구가 한창이었다. 연구소 산하 AI 연구센터를 이끄는 한남식 교수는 “학제간 융합 연구의 뿌리가 깊은 영국의 바이오제약 학계에 AI 기술을 결합해, 인류의 난제를 풀 물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밀너 제약 연구소 내부의 모습. 제약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AI 기술 연구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도 갖추고 있다. 사진 윤상언 기자

지난달 19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밀너 제약 연구소 내부의 모습. 제약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AI 기술 연구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도 갖추고 있다. 사진 윤상언 기자

영국은 국민들로부터 유전자 정보를 기부받는 ‘바이오뱅크’와 전국민 의료정보 데이터와 AI 기술의 접목도 노린다. 앨런 튜링 연구소의 사이먼 리브 혁신디렉터는 “AI 기술 발전에도 영국만의 강점을 살리는 데에 집중한다”며 “연구소는 AI와 각 산업을 잇는 일종의 외교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또 경제의 80.5%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특히 법률·금융 같은 지식서비스 산업에서 AI를 접목하고 있다. 최근 인간 변호사의 개입 없이 계약서 검토부터 협상, 계약 완료까지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법률 보조 AI도 영국에서 나왔다. 케임브리지대 수학자들이 창업한 스타트업 루미넌스가 지난 7일 공개한 ‘AI 오토파일럿’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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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AI 개발은 물론, 핵심 산업에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중 제조업 비중은 28%로 전통 제조 강국인 독일(18.5%), 일본(20.5%)보다도 높다. 제조업의 노동 생산성을 그동안 로봇 자동화와 IT 기술을 활용해 꾸준히 끌어올린 데 이어 생성 AI와 디지털트윈 같은 최신 AI 기술로 산업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7위로 낮은 편인 서비스업 노동생산성 개선에 AI의 잠재력이 크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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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국내 배터리·반도체 등 대기업은 이미 AI를 쓰고 있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AI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은 “독일은 AI 기술 고도화에 매몰되지 않고 산업용 AI를 도입해 자국 기반 산업을 혁신하고 있는데, 한국도 제조업에 AI를 활용할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AI 교육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정동 교수는 “한국은 각 산업과 AI 전문가 사이 사일로(장벽)가 높은 편”이라며 “AI를 독립 학문처럼 다뤄서는 산업 현장에 AI 역량이 스며들기 어렵고, AI와 데이터 기반으로 사고할 수 있게끔 학부에서부터 학과 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