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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고 살던 집서 쫓겨나" 납북어부, 50년만에 누명 벗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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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광주법원에서 항소심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동림호 납북어부들과 유족들이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광주법원에서 항소심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동림호 납북어부들과 유족들이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납북어선 동림호 선원들이 50년만에 간첩 굴레에서 벗어났다.

9일 광주고법 형사1부(박혜선 고법판사)는 9일 납북어선 동림호 선원 5명(1명 생존·4명 사망)에 대한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심에서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선원 5명은 선장 신평호(84)씨와 함께 1971년 5월 인천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목선 동림호를 타고 조기를 잡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됐다. 이후 이듬해인 5월 선원들은 북한에서 풀려나 고향 전남 여수에 도착했다.

하지만 일부러 어로한계선을 넘어가 북한에 붙잡혔고 사상교육·간첩 지령을 받은 뒤 의도적으로 풀려나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 1년(집행유예 3년) 등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사자들의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져 50여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피고인 측은 “영장 없이 불법 구금상태에서 조사받았고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도 “50여년 전 검찰이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재 검찰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한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사망 선원의 부인은 최후 진술에서 “반공법 위반 낙인으로 셋방살이하다 울면서 쫓겨나고, 7살 아이한테도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며 “주민등록번호에도 범죄자 번호를 표기하는 ‘112’라는 번호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탄했다.

재판부는 “과거 수사기관 진술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였고 증거 능력도 없다”며 “공소사실은 생명과 신체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협박에 의해 강요된 행위로 봐야 하므로 피고인들은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선원과 유족들은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

앞서 지난 9월 열린 재심에서 먼저 무죄 판결을 받은 동림호 선장 신평호씨도 이날 법정을 찾아 함께 기쁨을 나눴다.

신씨는 “제가 선장으로서 선원들에 대한 책임이 있어 이 자리에 왔다”며 “50년 동안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고생 많이 하며 살다가 무죄 받으니, 얼마나 기쁘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납북어부 관련 전남에서는 동림호 납북어부 6명(4개 사건), 탁성호 납북어부 5명(1개 사건) 등이 모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재심 결과가 확정되면 형사보상금 등을 신청하는 등 후속 법적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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