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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강세지’서 바이든표 ‘낙태 이슈’ 먹혔다…대선 변수 부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세를 보였던 주(州)에서 민주당이 옹호해온 낙태(임신 중단) 허용 이슈가 주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7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에서 진행된 낙태권 보장 개헌안은 정족수인 과반의 찬성을 받았고,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버티고 있는 버지니아주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다수당에 올라서며 낙태 금지법 추진이 사실상 좌초됐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고전하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이 추진해온 낙태 허용 문제가 주민투표와 주의회 선거 결과에서 선택을 받으면서, 낙태 문제는 내년 대선에서도 결과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연승' 오하이오도 "낙태 찬성"

지난 두 차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유 있게 승리했던 오하이오주(州)에서 치러진 낙태권 보장 개헌을 위한 주민투표는 과반의 찬성을 받으며 통과됐다. 오하이오는 원래 민주·공화당이 각축을 벌여온 '경합주'였다. 그러나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바이든 대통령을 각각 8% 포인트 차로 앞서면서 확실한 공화당의 '표밭'이 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집회장에서 낙태 관련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낙태권 보장안 지지자들이 포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한 집회장에서 낙태 관련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낙태권 보장안 지지자들이 포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오하이오에서 낙태 허용을 놓고 주민투표가 치러진 이유는 트럼프 정부 때 임명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주도했던 미 연방 대법원이 지난해 6월 임신 6개월까지의 낙태를 합법화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판결로 낙태권 존폐에 대한 결정은 주(州)로 넘어갔고, 주별로 낙태권에 대한 원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낙태 문제는 미국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날 투표로 오하이오는 대법원 판결 이후 낙태권 보장을 결정한 7번째 주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하이오의 주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인들은 다시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데 투표했고, 민주주의는 승리했다"며 환영했다. 그러면서 "오하이오 주민들과 미국의 유권자들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이 뽑은 사람에 의한 낙태 금지 입법 시도를 거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마가 공화당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초강경 보수 공화당원을 의미한다.

한편 이날 오하이오에서는 의료용이 아닌 기호용 마리화나(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주민투표도 이뤄졌다. 95% 개표 상황에서 찬성 56.8%, 반대 43.2%로 합법화안이 통과했다. 이로써 오하이오 주는 미국에서 24번째로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한 주가 됐다. 이번 투표로 21세 이상 성인의 마리화나 재배·소유·판매·구매·사용이 합법화될 전망이다.

'레드' 버지니아도 '낙태 금지' 제동

같은 날 버지니아주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에 올랐다. 버지니아 의회 선거의 핵심 쟁점 역시 낙태 문제였다.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니지아 주지사는 의회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날 선거로 공화당이 추진하려던 낙태 금지 정책은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선거 전까지 버지니아주의 상원(40석)과 하원(100석)은 각각 민주당 22석·공화당 18석, 민주당 46석·공화당 51석이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기존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다수당이 됐다.

버지니아 주지사 글렌 영킨(오른쪽 끝).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려던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의 구상은 이번 투표로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AP=연합뉴스

버지니아 주지사 글렌 영킨(오른쪽 끝).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려던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의 구상은 이번 투표로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AP=연합뉴스

현행 버지니아 주 법률은 임신 26주까지 낙태를 허용해 왔다. 그러나 영킨 지사는 이번 선거에서 주의회 양원을 장악한 뒤 임신 15주까지만 낙태가 가능하도록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공언해왔다. 특히 영킨 지사는 공화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도 꼽혀왔기 때문에 외신들은 이번 결과로 공화당의 영킨 지사의 정치력에도 타격을 입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버지니아주 민주당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수잔 스웨커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영킨 주지사와 공화당을 버지니아 주민들이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켄터키주의 민주당 소속 현직 주지사인 앤디 베시어 지사(왼쪽 둘째)는 이날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됐다. AP=연합뉴스

켄터키주의 민주당 소속 현직 주지사인 앤디 베시어 지사(왼쪽 둘째)는 이날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됐다. AP=연합뉴스

이밖에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보수 성향의 켄터키주에서도 민주당 소속의 현직인 앤디 베시어 주지사가 공화당 대니얼 캐머런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또 공석이었던 펜실베이니아주 대법관 한 자리를 채우는 선거에서도 민주당 소속으로 그동안 '낙태권 수호자'를 자처해온 댄 맥커패리가 당선됐다.

공화당은 이날 주요 선거 가운데 미시시피주 주지사 선거에서 테이트 리브스 현직 지사가 재선에 성공한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상황이 됐다.

낙태, 내년 대통령 선거 '메가 이슈' 가능성 

이로써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민주당은 낙태 합법화에 반대하는 공화당과의 직·간접 대결이었던 오하이오주 주민투표와 버지니아주 의회 선거 등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지난해 중간선거(연방 상·하원 의원 및 주지사 등 선출)에 이어 내년 대선에서도 낙태 문제가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을 이슈라는 점이 확인된 것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ABC 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27%가 낙태 권리를 선거의 주요 이슈로 꼽았다. 32%를 기록한 인플레이션에 이은 메가 이슈였다. 특히 18~29세 유권자는 낙태(44%)를 물가나 경제에 앞선 최대의 이슈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낙태가 대선에 미칠 영향력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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