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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원짜리 육교’ 전락…서울로7017 철거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4일 오후 서울로7017은 나들이철 주말에도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뜸했다. 회색 콘크리트 교각 좌측엔 빌딩이 공사 중이다. 문희철 기자

4일 오후 서울로7017은 나들이철 주말에도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뜸했다. 회색 콘크리트 교각 좌측엔 빌딩이 공사 중이다. 문희철 기자

“공원이라기보다는 육교라고 봐야죠.”

지난 4일 오후 2시쯤 서울 중구 서울로7017을 지나던 행인 박모씨가 한 말이다. 중구 중림동에 거주하는 박씨는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차도를 ‘도심 속 공중정원’으로 개조하는 ‘서울로7017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누구보다 반겼다고 한다. 거주지 인근에 손자와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는 2017년 개장 이후 서울로7017에 거의 가지 않았다. 그는 “기껏 올라와도 칙칙한 빌딩 숲에 갇힌 느낌이라 올라오고 싶진 않다”며 “서울역 동부로 넘어갈 일이 있을 때만 육교처럼 건넌다”고 말했다.

서울로7017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조성했다. 만리동·중림동·남창동 등을 잇는 노후한 서울역 고가차도 바닥과 일부 램프를 철거하고 상부를 공원으로 리모델링했다. 사업비는 597억원을 썼다. 이름은 서울역 고가가 탄생한 해(1970년)와 보행로로 개장한 해에서 착안해 작명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외면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로7017은 개장 직후인 2017년 9월 시간당 보행자 수가 1만1006명~1만3618명이었다. 이후 급감했다.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549만852명이 찾았다. 시간당 762명으로, 개장 직후와 비교하면 6~7%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서울시 김연호 서울로관리사무소 운영팀장은 “과거엔 계수기 시스템으로 보행자 수를 셌는데 기계가 자꾸 오류를 일으켜서 폐기했고, 요즘엔 보안관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면서 수작업으로 집계하고 있다”며 “이용객 감소 원인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로7017이 외면당하는 것은 기후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게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폭 10.3m에 길이 1㎞의 콘크리트교각인 서울로7017은 여름철이 되면 콘크리트 복사열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햇빛을 피할 곳이 많지 않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 미끄럽다.

단풍놀이가 한창인 선선한 가을에는 그나마 낫다. 하지만 막상 방문해도 볼만한 경관은 없다. 인공 건축물이나 꽉 막힌 교통체증 정도만 조망이 가능하고, 공원에서 흔히 감상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빌딩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서울로7017은 다른 공원과 달리 편안함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공간”이라며 “그냥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로7017을 유지·관리하는데 매년 14억~36억원을 투입한다. 이용자가 많지 않은데 세금만 잔뜩 쓰는 셈이다. 이 때문에 철거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도심 흉물이 된 서울로7017은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시의회 차원에서도 (철거 등을 포함해)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서울역 일대 마스터 플랜 수립을 위한 사전 구상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고, 아직 철거 계획을 수립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 “서울로7017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좋지 않고 이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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