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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향은의 트렌드터치

호모 프롬프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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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AI는 프롬프트만큼만 똑똑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연일 이슈를 만드는 생성형 AI의 활용 수준을 판가름하는 핵심가치는 다름 아닌 프롬프트다. 프롬프트(Prompt)란 원래 컴퓨터가 명령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단말기의 신호를 뜻하는 단어다. 즉 ‘초거대 AI와 소통하는 창(窓)’이자 인공지능과 소통하는 방식, AI와의 티키타카 인터랙션이다.

생성형 AI(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의 응답 품질은 바로 이 프롬프트에 좌우되는데, 더 훌륭한 답변을 생성할 프롬프트를 작성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코딩세대, ‘프롬프터 제너레이션’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넘어 AI 네이티브의 시대, 서칭을 대신 맡기는 것을 넘어 리서치와 분석, 나아가 생각을 대신 맡기는 ‘친AI족’인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 ‘호모 프롬프트’는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AI와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간형에 대한 이야기다.

AI와의 소통 뜻하는 ‘프롬프트’
인공지능 시대 열어갈 키워드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은 사람
인문학적 성찰 더욱 중요해져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하루가 멀다고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한 기술과 서비스가 선보이는 이 시점에서 단지 기술의 변화를 좇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진보의 메가 트렌드 속에서 우리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인간의 고유 역량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기존 데이터와의 비교학습을 통해 새로운 창작물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창작의 영역이야말로 인간 이외의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라고 굳게 믿어왔던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AI가 쓴 대본을 작가가 손보고, 하루 만에 배우의 얼굴을 360도 촬영하고 목소리를 녹음해 소스를 확보한 후 AI 작업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게 하자는 일각의 제안에 미국 할리우드 작가협회와 배우 노동조합(SAG-AFTRA)이 동시 파업에 들어갔고, ‘해리 포터’의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더 배트맨’의 콜린 파렐과 같은 유명 배우들이 파업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흡사 과거 러다이트 운동을 상기시킨다. 증기기관이나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는 줄곧 있어왔지만, 그동안 작가나 배우처럼 ‘창작’에 종사하는 직업은 결국 인간 고유의 것이라는 믿음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칩의 용량이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서 보듯 기술 발달 속도는 선형적(線形的)이 아니라 가속적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황은 챗봇의 계산능력이 2년마다 100배 향상되고 있어 10년 후 챗봇의 성능은 지금의 100만배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이 발전 속도라면 AI가 예측을 넘어 추론과 창작, 짐작과 판단까지 가능할 것이란 사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미 이러한 현상을 가늠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AI를 잘 다룰지 몰라도 AI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몇 년 사이 코딩이 기본교육이 되었듯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당연해지는 근미래에는 AI 생태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며 체계적으로 AI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프리너(AI-preneur)로의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생성형 AI 덕에 평소 대비 단 20%의 자원과 노력으로 약 80%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세상에 승패는 나머지 20%에 달렸다.

그 미묘한 여백을 메꾸는 것은 더 나은 AI가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AI를 아날로그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다. AI에 대한 거부감과 결핍이 없고 사색과 해석으로 AI를 더 잘 활용할 줄 아는 호모 프롬프트 말이다.

AI시대를 일구어가는 호모 프롬프트들에게 진정한 가치는 신뢰다. AI가 결코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신뢰는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아무리 사실감 넘치는 용 그림도 눈을 그려 넣기 전까지는 날아오를 수 없듯 AI시대의 화룡점정은 ‘휴먼 터치’, 바로 사람이다.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처럼 AI의 혜택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 임박했고, 소비방식과 소비세력의 교체는 물론 소비생태계와 지형도의 변화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극단의 디지털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아날로그적이고 인문학적인 역량을 뽐내는 호모 프롬프트는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