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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직업병 예방도 패러다임을 바꿀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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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안종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안종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산재 피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타당한 보상문제와 적극적인 산재 예방 활동에 대해 환노위 위원들의 많은 지적과 정책 제안이 있었다. 특히 직업병 역학조사 지연 문제와 직업성 암과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 걸린 근로자가 날이 갈수록 많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과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공단이 수행한 사업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산재사고 사망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사고 사망이 곧 산재 사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일이 종종 있다. 산업재해는 사고재해와 질병재해로 이루어지며, 전체 산재 사망자 중 질병으로 숨지는 근로자가 사고 사망자보다 더 많다. 공단의 이름에서 보듯이 우리의 역할은 안전과 보건이라는 두 분야에서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다.

한데 보건은 안전과 성격이 크게 차이난다. 안전이 사고에 따른 사망과 부상이라면 보건은 유해요인 노출에 따른 질병이 문제가 된다. 육상경기에 빗대자면 안전은 100미터, 또는 200미터 단거리 경주고, 보건은 1만 미터 장거리 경기 또는 마라톤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영국, 독일 등 안전보건 선진국은 사고보다는 보건 관리에 힘을 쏟는 반면, 우리는 아직도 일터 사고 예방에 진력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사고 사망 근로자가 연간 100명대 내지 200명대로 줄어들었지만, 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조금씩 계속 줄어드는 추세지만 직업병과 뇌심혈관계 질환 등 업무상 질병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업무상 질병 사망자가 사고 사망자 수를 뛰어넘은 지가 제법 됐다.

사실 사고든, 질병이든 해마다 크게 줄일 수만 있다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그에 비례해 줄어든다. 하지만 업무상 질병, 특히 직업성 질병은 지금 열심히 예방사업을 펼친다 해도 그 성과는 10년 내지 30년 뒤 나타난다. 요즘 발견하는 업무상 질병은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30년 전부터 일터에서 화학물질 등 유해 위험요인에 노출돼온 결과다.

따라서 사고 예방뿐 아니라 질병 예방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듯이, 진정한 산업재해 예방은 안전과 보건의 두 날개로 높이 날 수 있음을 우리 사회가 깊이 성찰하기를 소망한다.

안종주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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