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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 개미'가 원한대로 됐다 "내년 6월까지 공매도 전면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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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6월까지 증시에 상장된 모든 종목의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다. 지금은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 종목을 대상으로 공매도가 허용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모든 공매도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과 기관이 공매도 투자에서 유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 있다는 개인 투자자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최근 증시 변동성 확대와 관행화된 불법 공매도 행위가 시장의 안정과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며 “공매도 금지 기간에 공매도 제도 전반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오는 6일부터 24년 상반기(24년 6월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오는 6일부터 24년 상반기(24년 6월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는 투자 전략이다. 주가가 내려야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개인 투자자 사이에선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부정적 소문이나 평가를 퍼뜨리는 식으로 주식시장을 교란한다는 것이다. 국내 공매도 시장에서 개인 대 기관ㆍ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2대 98 수준이다.

금융위는 공매도 금지 조치의 이유로 시장 변동성 확대를 들었다.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는 데다가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HSBC와 BNP파리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된 것이 이번 결정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불법 공매도 적발ㆍ제재 건수는 45건, 과태료ㆍ과징금 부과 금액 합계는 107억475만원에 달한다. 김 위원장은 “주요 기관 투자자들의 거의 관행적인 불법행위를 그대로 놔두고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라며 “이걸 개선하는 것이 저희의 법적 의무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공매도 관련 불공정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금지 기간에 제도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개인과 기관 간 대주 상환기간, 담보비율 등의 차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차입 공매도와 관련해 개인 투자자의 상환기관은 90일이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제한이 없다. 담보비율 역시 개인은 120%로, 외국인ㆍ기관(105%)에 비해 높다.

정부는 또 불법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파는 것)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치권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실시간 차단 시스템 구축 등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공매도 주문을 받을 때 주문자가 미리 주식을 빌렸는지 여부를 증권사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탁결제원 전산 등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충분히 구축할 수 있었는데 정부가 지금까지 방치한 책임도 있다”며 “한시적 중단 기간에 전산 시스템을 완비한 뒤 공매도 재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화도 예고했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6일 20명 규모의 공매도 특별조사단을 출범하고,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글로벌 IB(투자은행)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 조사 결과 추가적인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될 경우 최대한의 과징금과 형사처벌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시장 신뢰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그간 금융당국은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충분한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는 입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여권은 ‘메가 서울’에 이은 총선 전략 2탄으로 1400만 개인 투자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공매도 전면 금지’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공매도 금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사실 공매도는 시장의 가격 거품을 막고, 증시 변동성을 줄이는 순기능이 있다.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정부의 공매도 제한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가로막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학계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공매도와 주가 간 상관관계가 명확한 것도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등 과거에도 3차례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지만 주가는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했다. 공매도 금지보다는 당시 글로벌 주식시장 상황이 한국 증시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총선을 의식해 정확한 근거 없이 논의된 측면이 있다"며 "공매도 금지로 환호성을 지르는 개인 투자자가 일부 있을지 몰라도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체질이 안 좋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가격조정 역할을 수행하는 공매도를 개인 투자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금지시키는 건 시장 관점에서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포퓰리즘적 결정"이라며 "공매도 전면 금지로 인해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 결국 투자자 입장에선 또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매도(short selling)=없는 것을 판다는 의미로, 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먼저 매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해 되갚아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기법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A주식을 빌려 주당 1만원에 팔고 며칠 후 그 주식이 7000원으로 하락했을 때 다시 매입해 되갚는다면 주당 3000원의 수익을 얻는 식이다. 반대로 예상과 달리 주가가 상승할 경우 큰 손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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