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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수천마리 버린다…'1마리 수십만원' 참치 풍년에 울상 왜 [극과 극 한반도 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9월 강원 강릉시에서 어업을 하는 한 어민이 정치망에 걸린 참치를 배 위에 올린 모습. 참치는 국제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협약에 따라 국가별 어획 쿼터량이 정해져 있다. 이를 어기면 수산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어 폐기하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지난해 9월 강원 강릉시에서 어업을 하는 한 어민이 정치망에 걸린 참치를 배 위에 올린 모습. 참치는 국제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협약에 따라 국가별 어획 쿼터량이 정해져 있다. 이를 어기면 수산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어 폐기하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동해안에서 잡히는 참지 점점 커져 

지난 6월 16일 오전 9시쯤 강원 강릉시 주문진 해상에서 초대형 참치(참다랑어)가 정치망(定置網) 그물에 걸려 포획됐다. 이날 잡힌 참치 한 마리 무게는 무려 160㎏. 당시 어민도 웬만한 성인 키보다 큰 참치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동해안에선 몇 년 전부터 참치가 잡혔는데 대부분은 5~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열대성 어류인 참치는 일정한 서식지를 두지 않고 주기적으로 이동한다. 주로 태평양 온대·열대 바다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 등으로 동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강릉지역에서 정치망 어업을 하는 김철곤(51)씨는 “몇 년 전부터 참치가 잡히기 시작하더니 지난해부터 하루에 적게는 5t, 많게는 20t이 그물에 걸렸다”며 “한반도 해역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지역 주요 어종이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3일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55년간(1968∼2022) 국내 해역 연평균 표층(表層)수온 상승률은 약 1.36도다. 같은 기간 지구 평균 상승률은 0.52도였다. 국내 연근해 바닷물 온도가 2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삼면이 바다와 접한 한반도 수온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급격한 셈이다.

지난 6월 강원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힌 초대형 참치(참다랑어) 모습. [사진 강릉수협]

지난 6월 강원 강릉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힌 초대형 참치(참다랑어) 모습. [사진 강릉수협]

지난해 6월 경북 영덕군 앞바다에서 한 어선이 그물에 걸린 참치를 건져올리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해 6월 경북 영덕군 앞바다에서 한 어선이 그물에 걸린 참치를 건져올리고 있다. 사진 독자

참치 그물째 바다로 쏟아 버리는 어민들

해역별 표층수온 상승률은 동해 1.82도, 서해 1.19도, 남해 1.07도로 동해가 가장 높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동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표층 수온 상승률이 나타난 원인으로 동해 중부해역과 동해 남부해역 사이에 존재하는 수온 극전선이 점점 북상한 것을 꼽는다. 또 동해역에 열을 수송하고 있는 대마난류 세기가 1980년대 이후 강해진 것도 주목하고 있다.

수온 상승에 어족자원이 바뀌면서 어촌마다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6월 경북 영덕군 먼바다. 그물에 어른 팔뚝보다 큰 참치 수천 마리가 걸렸다. 언뜻 보기엔 운수 좋은 어선 한 척이 풍어(豐漁)를 맞은 모습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민은 그물을 들어 올려 그 많은 참치를 다시 바다로 쏟아내고 있었다. 참치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

어민들이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참치를 바다에 버리는 건 어획 쿼터(할당량) 때문이다. 일부 어종은 어자원 보호 국제 협약에 따라잡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고,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참치도 국가별로 쿼터가 있다.

지난해 국내 참치 어획 쿼터는 금세 차버렸고 쿼터를 초과해 어획된 참치는 위판은 물론 육지로 들여오는 것도 금지됐다. 올해는 아직 참치 어획 쿼터가 조금 남은 상황이지만, 지난해처럼 참치를 바다에 그물째 버려야 할 상황을 피하기엔 남은 쿼터가 넉넉하지 않다.

지난해 6월 경북 영덕군 앞바다에서 정치망어선에 잡힌 참치들이 그물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 어민들이 그물째로 참치 사체를 바다에 바다에 버리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해 6월 경북 영덕군 앞바다에서 정치망어선에 잡힌 참치들이 그물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 어민들이 그물째로 참치 사체를 바다에 바다에 버리고 있다. 사진 독자

참치 어획량 급증했는데 쿼터는 ‘찔끔’  

1990년대 후반에는 남해안에 봄·여름철 잠시 머물렀던 참치는 해수온이 높아지며 가을·겨울철까지 동해안에 나타난다. 영덕 지역 한 정치망 어선 선장은 “옛날에는 동해안에 전어가 많이 나오고 참치는 연간 어획량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게 잡혔는데 요즘은 전어는 잘 보이지 않고 참치가 한 번에 몇천 마리씩 잡힌다”고 말했다.

참치 어획 쿼터는 매년 국제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가 조사한 뒤 국가별로 배정한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가 정한 한국 참치 쿼터는 748t. 지난해 쿼터인 870.1t이나 2021년과 2020년 쿼터인 793t, 761.5t보다 적다. 쿼터를 초과해 어획하는 어민은 수산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각 국가에 배정된 참치 어획 쿼터는 다시 정부가 업종별로 배분한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참치 어획 쿼터를 부산 대형선망어선에 516t으로 가장 많이 배정하고 강원과 경북 정치망어선에 각각 72.25t씩 배정했다. 지난해 부산 대형선망어선에 713.8t, 강원·경북 정치망어선에 각각 24.4t을 배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치망어선 비중이 높아졌다. 이후 정치망어선은 아직 참치를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지난해 7월 28일 오전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안에 참치 사체가 떠밀려와 쌓여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28일 오전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안에 참치 사체가 떠밀려와 쌓여 있다. 뉴스1

“지금 쿼터, 한 어민이 하루 이틀이면 채울 양” 

해양수산부가 최초 배정한 참치 어획 쿼터가 80~90% 정도 채워지면 각 업종에서는 쿼터 추가 배정 신청을 한다. 경북은 올해 두 차례 추가 배정 신청을 한 결과 64.47t을 받아 총 136.72t이 됐다.

하지만 이는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식’이다. 경북환동해지역본부 관계자는 “국가별 총 쿼터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경북 정치망어선 쿼터를 늘리면 다른 업종에서 쿼터가 줄어든다”며 “국제기구에 국내 사정을 잘 설명해 총 쿼터를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설명했다.

어민들은 한국에 배정된 참치 어획 쿼터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영주 영덕정치망어선협회장은 “700~800t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어민 혼자 잡아도 하루 이틀 만에 채울 수 있는 양”이라며 “참치가 하루에 많이 잡히면 1만 마리씩 잡히는데 한 마리에 7~8kg이라고 계산하면 하루 만에 경북 지역 쿼터를 다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쿼터를 초과하면 바다에 버려야 하는 것도 어종 보호라는 취지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참치는 계속해서 헤엄을 쳐야 호흡을 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 그물에 걸리면 금세 죽는다. 그물에 걸린 참치를 산 채로 다시 바다에 놓아주고 싶어도 그 전에 폐사, 결국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난해 7월 28일 오전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안에서 관계지들이 해변으로 밀려온 참치 사체를 치우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28일 오전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안에서 관계지들이 해변으로 밀려온 참치 사체를 치우고 있다. 뉴스1

정부 소극 대응에…어민들 “현실적 대안 필요”

실제 지난해 7월 28일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변에서 죽은 참치 10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참치는 영덕 지역 어민이 버린 것이었다. 당시 피서철을 맞아 장사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은 참치가 부패하면서 나는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최 회장은 “함정어법을 쓰는 정치망 어선의 특성상 참치만 빼고 다른 어종만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현실에 맞게 쿼터를 정하든 죽은 참치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든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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