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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똑같다" 흑산도·군산 으르렁…온난화가 키운 '홍어 전쟁' [극과 극 한반도 바다]

중앙일보

입력

전북 군산 어청도 인근 해역에 나간 한 어선에서 연승 어업을 통해 홍어를 연신 낚아 올리고 있다. [사진 서해근해연승연합회]

전북 군산 어청도 인근 해역에 나간 한 어선에서 연승 어업을 통해 홍어를 연신 낚아 올리고 있다. [사진 서해근해연승연합회]

"사흘간 80마리 잡아…적자 날 판" 

"그제(9월 11일) 새벽에 나왔다가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3일 오전 11시30분쯤 홍어잡이를 마친 신안 근해연승협회 이상수 회장은 "(전남 신안군) 흑산도 서북방 35마일(56㎞) 해역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먼바다인 데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뒤섞여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이 회장은 "어장을 봐놨다가 며칠 있다 또 (주낙을) 땡기러(당기러) 가는 걸 반복한다"며 "사흘간 80마리밖에 못 잡았다"고 했다. 이 회장이 모는 23t급 주낙 어선엔 외국인 6명을 포함해 선원 7명이 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선원 인건비와 기름값, 주낙 어구 정리 비용 등 한 달 경비만 5000만원가량 든다"며 "한 번 출항할 때 200~300마리는 잡아야 수지 타산이 맞는데 이렇게 가다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홍어=흑산도' 공식 흔들 

'홍어=흑산도'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이상 기후로 서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군산 어청도 인근에서 잡히는 참홍어(홍어) 어획량이 급증하면서다. 정부가 올해부터 홍어 포획량을 제한하는 제도를 서해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홍어 주도권을 두고 전남 신안군 흑산도와 전북 군산시 간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4일 전북도에 따르면 군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홍어는 매년 늘고 있다. 2017년 군산 홍어(4t) 점유율은 2%에 그쳤다. 이후 2019년 224t, 2020년 637t 등 점차 늘더니 2021년 전국 생산량(3121t)의 45%(1417t)를 차지했다. 반면 과거 30%를 점유하던 흑산도 홍어는 2021년 14%(407t)로 줄었다.

군산과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는 같은 어종이다. 가오리와 비슷한 마름모꼴로 수명은 5~6년이다.  기후 변화로 동중국해 난류가 서해로 유입되면서 4~5년 전부터 군산에 오징어·고등어뿐 아니라 홍어 어장도 형성됐다는 게 군산시 설명이다.

전남 신안군수협 흑산지점 위판장에서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한창이다. [사진 신안군]

전남 신안군수협 흑산지점 위판장에서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한창이다. [사진 신안군]

홍어 TAC 서해 전역 확대 

홍어는 정부가 수산 자원 보호를 위해 포획량을 제한하는 제도인 총허용어획량(TAC) 대상이다. 한국은 1999년 TAC(total allowable catch)를 도입했다. 홍어가 TAC 대상이 된 건 2016년부터다. 적용 수역은 흑산도 근해와 서해 북위 37도 이북인 인천 옹진군 대청도 근해 등 2곳이었다.

최근까지 군산은 TAC 대상이 아니어서 금어기(6월 1일~7월 15일)를 제외하면 1년 내내 홍어를 잡을 수 있었다. 신안군 관계자는 "홍어는 수온 5~15도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류로 봄철 흑산도 북서쪽에 분포하다 수온이 상승하면 인천 대청도 해역까지 북상 후 겨울철 다시 남쪽으로 이동한다"며 "산란을 위해 가을에 흑산도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군산 등 중간 해역에서 많이 잡아버리면 흑산도 어민이 잡을 수 있는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흑산도 어민을 중심으로 "군산 어민만 아무 제약 없이 홍어를 잡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TAC 적용 지역 확대를 요구했다.

이에 해수부는 지난 7월 홍어 TAC 적용 해역을 군산을 포함한 서해 전역으로 확대했다. 연간 전체 홍어 어획량은 3668t으로 정했다. 기간은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다. 시·도 배정 물량은 전북이 1351t으로 제일 많다. 이어 전남 731t, 충남 729t, 인천 251t, 경남 81t, 부산 65t, 제주 33t 순이다. 해수부 유보량은 427t이다.

한 어민이 전남 심안군 흑산도 앞바다에서 주낙으로 잡은 홍어를 갈고리로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신안군]

한 어민이 전남 심안군 흑산도 앞바다에서 주낙으로 잡은 홍어를 갈고리로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신안군]

"전북 1351t …전남 2배" 

TAC가 확대됐지만, 군산과 흑산도 간 견제 분위기는 여전하다. 군산 어민은 "군산 홍어는 흑산도 홍어와 맛·품질이 비슷한데도 가격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흑산도 어민은 "흑산도 홍어는 산란하기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에 다른 지역 홍어보다 식감이 찰지고 맛있다"고 했다.

홍어는 올해 포획량이 줄면서 가격이 지난해보다 최대 3배 올랐다. 군산시·신안군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군산 홍어 경매가는 1㎏당 1만5000~1만6000원이다. 신안에선 흑산도 홍어 암치(암컷) 8㎏이 2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1㎏에 2만5000원 수준이다.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이뤄지는 군산시수협 해망동 위판장. [사진 서해근해연승연합회]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이뤄지는 군산시수협 해망동 위판장. [사진 서해근해연승연합회]

신안군 "신규 지역 배분량 더 많아" 

군산만 해도 지난해 이맘때보다 홍어 포획량이 60~70% 줄었다. 현재 하루에 500~600상자(20㎏ 기준) 정도가 거래된다는 게 전북도 설명이다. "이대로 가다간 TAC 배정 물량을 못 채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군산 지역 홍어잡이 어선은 12척이다.

전북도·군산시는 흑산도 홍어 아성을 뛰어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역 특색이 담긴 브랜드 개발 ▶위판장과 수산물 저장 시설 현대화 등을 추진 중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DNA(유전자) 감정으로 군산 홍어와 흑산도 홍어가 같다는 것도 홍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안군은 불만이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홍어를 무제한으로 잡아온 군산을 비롯한 신규 지역이 외려 수년간 TAC 규정을 잘 지켜온 신안보다 물량을 더 많이 가져가는 등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했다.

홍어로 만든 회와 음식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회, 구이, 국, 어포로 좋다”고 기록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홍어로 만든 회와 음식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회, 구이, 국, 어포로 좋다”고 기록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수부 TAC 관리 철저히 해야" 

현재 흑산도에선 22척이 주로 주낙을 이용해 홍어를 잡고 있다. 주낙은 긴 줄에 낚싯바늘을 중간중간 매단 뒤 미끼를 끼우지 않은 민낚시를 홍어 다니는 길목에 놓고 걸리게 하는 조업 방식이다.

신안군은 흑산도 홍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2009년부터 수산물 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소비자가 홍어에 달린 QR코드를 찍으면 신안군 홈페이지로 연결돼 홍어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양측 어민 모두 "해수부가 TAC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어민이 배정된 물량을 지키지 않거나 불법 변형 어구를 사용한다"면서다. 임세종 서해근해연승연합회장은 "'우리는 어획량을 많이 주고 저쪽은 조금 줘야 한다'는 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홍어 시장 전체가 무너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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