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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우리의 것이다"…총성 없는 전쟁 치르는 흑산도∙군산

중앙일보

입력

'군산 홍어' 시대 오나…주산지 급부상

전남 신안군 흑산도와 전북 군산시가 홍어 주도권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여전히 '홍어=흑산도' 공식이 대세지만, 기후 변화로 군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홍어가 국내 생산량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면서 두 지역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군산시는 30일 "최근 수온 상승으로 군산 어청도 인근에서 잡히는 참홍어(이하 홍어) 어획량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군산시에 따르면 2017년 군산 홍어(4t) 점유율은 2%에 그쳤으나, 2019년 224t, 2020년 637t, 2020년 637t으로 점차 늘더니 지난해 전국 생산량(3121t)의 45%(1417t)를 차지했다. 반면 과거 30%를 점유하던 신안 흑산도 홍어는 지난해 14%(407t)로 줄었다.

도대체 홍어는 어떤 물고기이기에 서해를 어장으로 둔 두 지역 사이에 긴장감이 감도는 걸까.

이달 초 전북 군산 어청도 인근 해역에 나간 한 어선에서 연승 어업을 통해 홍어를 연신 낚아 올리고 있다. 사진 군산 서해근해연승연합회

이달 초 전북 군산 어청도 인근 해역에 나간 한 어선에서 연승 어업을 통해 홍어를 연신 낚아 올리고 있다. 사진 군산 서해근해연승연합회

참홍어 한 종류…기후 변화로 군산도 어장 형성

군산과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는 기본적으로 같은 어종이다. 가오리와 비슷한 마름모꼴로 수명은 5~6년이다. 가을과 이른 봄 사이에 산란하고, 알은 해조류에 붙어 3~8개월 후 부화한다. 홍어는 수온에 따라 서해안 일대를 이동하는 어종이다. 기후 변화로 동중국해 난류가 서해로 유입되면서 3~4년 전부터 군산에 오징어·고등어뿐 아니라 홍어 어장도 형성됐다는 게 군산시 설명이다.

홍어는 수산 자원 보호를 위해 정부가 포획량을 제한하는 제도인 총허용어획량(TAC) 대상이다. EU를 비롯해 뉴질랜드·미국·일본 등 수산 선진국은 수산 자원을 지속해서 이용・관리하기 위해 TAC(total allowable catch)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홍어 생산량 추이. 사진 군산시

국내 홍어 생산량 추이. 사진 군산시

흑산도·대청도 어획량 제한…군산은 제외  

한국은 1999년부터 TAC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어획량의 40%를 TAC로 관리하고 있다. 대중성 어종(고등어·전갱이·오징어·갈치·참조기·삼치), 자원 감소 어종(대게·붉은대게·참홍어·꽃게), 지역 특수 어종(도루묵·키조개·개조개·바지락·제주소라) 등 15개 어종이 관리 대상이다.

홍어가 TAC 대상이 된 건 2016년이다. 현재 적용 수역은 흑산도 근해와 서해 북위 37도 이북인 인천 옹진군 대청도 근해 등 2곳이다. 해수부가 적용 해역을 설정하고, 관리 권한은 각 광역자치단체에 넘겼다. 군산은 아직 TAC 대상이 아니어서 금어기(6월 1일~7월 15일)를 제외하면 1년 내내 홍어를 잡을 수 있다.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이뤄지는 군산시수협 해망동 위판장. 사진 군산 서해근해연승연합회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홍어 경매가 이뤄지는 군산시수협 해망동 위판장. 사진 군산 서해근해연승연합회

군산 어민 "흑산도 홍어와 가격은 3배 차이" 

군산에서 홍어잡이를 하는 어선은 13척이다. 주로 연승 어업으로 조업하고, 대구도 함께 잡는다. 연승 어업은 긴 끈 곳곳에 낚시찌를 달아 수면에 띄우고 미끼를 꿴 낚싯바늘을 바닷속에 늘어뜨려 고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군산 어민들은 "군산 홍어는 흑산도 홍어와 맛과 품질이 비슷한데도 소문이 덜 나 가격 면에서 홀대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실제 흑산도 홍어는 군산 홍어보다 3배 정도 비싸다. 지난해 홍어 생산량과 생산 금액 기준으로 흑산도 홍어는 1㎏에 1만5000원, 군산 홍어는 5700원 수준이다. 임세종 군산 서해근해연승연합회장은 "홍어는 삭혀서 먹느냐, 회로 먹느냐 등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다를 뿐"이라며 "군산에서 잡는 홍어의 20%만 군산에서 소비되고, 나머지 80%는 수도권과 전남 목포 등 외지로 간다"고 말했다.

전북도·군산시·군산시수협 등은 흑산도 홍어 명성을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군산시는 지역 특색이 담긴 브랜드와 신상품을 개발하고 위판장과 수산물 저장 시설 등을 현대화할 계획이다. 유상규 군산시수협 해망동위판장장은 "소비자들은 홍어 맛은 비슷하고 가격은 흑산도보다 세 배 싼 군산으로 오는 게 이득"이라며 "지역 특화 브랜드를 만들고 수산 이력제 등을 도입하면 군산 홍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홍어로 만든 회와 음식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회, 구이, 국, 어포로 좋다”고 기록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홍어로 만든 회와 음식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회, 구이, 국, 어포로 좋다”고 기록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흑산도 어민 "형평성 안 맞아…TAC 확대해야"

반면 흑산도 어민들은 군산 홍어를 견제하는 분위기다. 이상수 흑산도 홍어연승협회장은 "흑산도 주민의 70~80%가 홍어 덕분에 먹고 산다"며 "홍어는 다른 어종보다 산란 양이 턱없이 적어 TAC 적용을 받지 않는 지역에서 마구잡이 조업을 하면 씨가 마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어는 연어·뱀장어 같은 회유성 어종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홍어는 봄부터 가을까지 인천 쪽으로 올라갔다 겨울에 산란하기 위해 흑산도 해역으로 내려온다"며 "가을에 흑산도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군산 등 중간 해역에서 홍어를 많이 잡아버리면 흑산도 어민이 잡을 수 있는 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전남도·신안군은 해수부에 "군산 어민만 아무 제약 없이 홍어를 잡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TAC 적용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올해 신안군이 배정받은 홍어 어획량은 592t으로 인천까지 합하면 총 802t이다. 군산의 절반 정도다.

과거 흑산도산 홍어의 집산지인 나주 영산포에 있는 '홍어의 거리'. 프리랜서 장정필

과거 흑산도산 홍어의 집산지인 나주 영산포에 있는 '홍어의 거리'. 프리랜서 장정필

해수부 "검토 착수…홍어 느는 추세여서 신중히 접근"

현재 흑산도에선 어선 19척이 주로 주낙을 이용해 홍어를 잡고 있다. 긴 줄에 낚싯바늘을 중간중간 매단 뒤 미끼를 끼우지 않은 민낚시를 홍어 다니는 길목에 놓고 걸리게 하는 조업 방식이다.

신안군은 흑산도 홍어의 부가 가치를 높이고 다른 지역 홍어와 차별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수산물 이력제를 시행하고 있다. 처음엔 홍어 꼬리에 바코드를 달았다가 현재는 QR코드 형식으로 바뀌었다. 소비자가 QR코드를 찍으면 신안군 홈페이지로 연결돼 홍어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흑산 홍어잡이 어업은 2020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신안군과 신안군 관광협회 흑산면지회·신안군수협 등은 2020년부터 '홍어썰기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홍어 인기에 주문이 쏟아져도 부위별로 잘 써는 사람이 부족해 상품 발송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다.

신안군 관계자는 "흑산도 홍어는 산란하기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에 다른 지역 홍어보다 식감이 찰지고 맛있다"며 "하지만 가격이 비싸 다른 지역에서 잡은 홍어를 흑산도 홍어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 서울에선 흑산도 홍어 바코드를 여러 마리에 붙여 팔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흑산도를 중심으로 TAC 확대 요구가 커지자 정부도 검토에 들어갔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홍어 자원이 느는 추세여서 자원 관리 시급성은 없지만, TAC에 참여하는 어민들이 피해가 있다고 해 TAC 확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TAC 대상 수역을 넓히면 흑산도 홍어라는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어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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