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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이자이익 첫 30조 돌파…초과이익 환수 힘 실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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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06면

은행 ‘횡재세’ 도입하나

올해 초 ‘은행은 공공재’라며 은행권의 고통 분담을 요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또 다시 ‘은행의 종노릇’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이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일 하나은행이 소상공인에 대한 1000억원 상당의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한 배경이다.

전문가들, 취약계층 지원 확대 권고

그런데 이와 별도로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발적 사회 환원과 관계없이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고금리로 은행의 이익만 과도하게 늘어나, 이를 통제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두는 배경에는 과점과 담합이 있다는 게 거의 명백하다”면서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은행 초과 이익을) 시스템적으로 걷어서 어려운 데 쓰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초과이익 환수에 대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에 대해 우리나라 특성에 맞춰 종합적으로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초과이득세라고도 불리는 횡재세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으로 거둔 이익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거둔 초과 이익에 대해 매기는 일종의 세금이다. 다만 세금 형태일 수도 있고, 기부금 등의 형태일 수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횡재세는 경제 위기 때 외부 요인이나 독점적 지위 덕에 발생한 초과 혹은 과다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최근 이탈리아가 은행을 상대로 도입했고, 미국에서는 정유사에 횡재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사실 올해 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한국판 횡재세’ 법안을 발의하면서 화두를 던졌다. 당시 횡재세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이후 은행 개혁 목소리가 잠잠해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하다 최근 고금리 장기화, 대통령의 발언 속에 논란이 커지는 양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 주장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금리 상승에서 출발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대출금리가 치솟고 있고, 이로 인해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이자이익으로 초과 이윤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5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5대 금융지주의 경영 실적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올 3분기 누적 이자이익 총액은 30조93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7조331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신한은행이 6조2563억원, 하나은행 5조9648억원, NH농협은행 5조7666억원, 우리은행 5조6170억원 순이다.

이자이익이 확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은행도 할 말은 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5대 대형은행의 순이자마진(NIM) 2.67%로, 국내 5대 은행 1.63%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국내 은행에 ‘과도한 이자장사’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엔 금융선진국인 미국보다 NIM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마진율도 점점 둔화하고 있다. 3분기 주요 은행의 NIM은 2분기(1.67%)보다 0.02%포인트 낮은 1.65%였다.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예금 이자 등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도 그만큼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서 주장한 것처럼 ‘쉽게’ 벌거나 ‘과도하게’ 번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은행은 이자이익 등으로 번 돈으로 ‘퇴직금 잔치’를 벌이면서 비난이 커졌다. 1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은행 경영현황 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5대 은행은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하면서 2357명에게 1인당 평균 3억5548만원의 희망 퇴직금을 지급했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4억794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3억7600만원)·우리은행(3억7236만원)·NH농협은행(3억2712만원)·신한은행(2억9396만원) 순이었다. 이는 퇴직자의 기본퇴직금을 뺀 금액으로, 실제 희망퇴직자가 받은 돈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출연금 늘려 이익 환수 전망도

금융당국이 은행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나선 만큼 횡재세는 어떤 형태가 됐든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은행 과점 구조에 대한 개혁 목소리가 드높았던 연초와 달리, 이번엔 은행권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보단 정치 공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은행의 과도한 이익 추구를 통제할 필요는 있지만, 정부가 이익을 직접 환수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대마진이 늘어나는 것을 금융당국이 감독하는 방식으로 이익이 소비자에게 직접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도 횡재세 반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은행 기업 가치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은 취약계층 등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양적완화 조치로 예금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었던 유로지역 은행과는 제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초과이득세 논의의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횡재세 도입 논란에 세금 형태보단 취약계층에 대한 은행권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권고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기간에 피해 업종은 헬스, 교육시설, 교통 등 명백하지만 수혜기업에 대해선 논란이 있어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며 “초과이익 환수는 국가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은행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2022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 총금액은 1조2380억원으로 지난해(1조617억원)보다 1763억원(16.6%) 증가했다. 2006년 보고서 발간이래 가장 많은 규모다. 다만 최근 순익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 비중은 줄었으나, 올해는 연초부터 사회공헌 확대에 힘써온 만큼 금액과 비중 모두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출연금·기부금을 늘려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12월 정책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재원 확대 방안이 담길 예정이라는 것이다. 은행 등 금융사는 2021년부터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이하 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익공유제’의 일환으로 도입됐으나 금융권의 반발이 커 2026년 일몰되는 한시법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은행은 매년 1000억원 정도를 출연하고 있다.

정부는 은행 출연금에 복권 기금 등을 더해 기금을 조성,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운영한다. 금융당국은 세금 형태는 제도적으로 이중과세 문제가 있어 도입이 쉽지 않은 만큼 은행의 출연금을 늘리는 형태로 사실상 횡재세를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출연금은 서민 금융 지원에만 쓸 수 있어 사용이 제한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에너지 업체에 최대 45% 횡재세…헝가리는 제약·통신사에 부과

횡재세 도입과 관련한 논란은 비단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긴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급등하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초과이윤을 누리는 기업에 대한 횡재세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8월 “유럽 전역에서 횡재세가 도입되거나 제안된 사례가 3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올 1월부터 국민 생계비 위기를 해결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에너지 업체 이익에 대해 최대 45%에 달하는 횡재세를 새롭게 부과했다. 전기·가스 업체에 대한 횡재세 세율도 2028년 3월까지 35%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다. 체코는 올해 1월부터 횡재세를 도입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이 최근 3년간 연평균 과세표준액의 120%를 넘는 경우 초과액에 대해 60%의 횡재세를 부과한다.

헝가리는 은행권을 비롯해 에너지 기업, 제약사, 통신사 등에 횡재세를 거두고 있다. 이탈리아는 8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막대한 추가 이익을 거둔 은행에 “40%의 세율로 일회성 세금을 물리겠다”는 특별법을 승인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이 테클을 걸면서 이를 백지화하고, 은행이 납부해야할 세금(초과수익)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는 경우 세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대폭 수정했다. 횡재세 부과가 은행 부문이 경기 침체 여파에 더 취약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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