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여 가지 한국 가정식 연대기, 미식가들 감탄 절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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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24면

영문 한식 쿠킹북 낸 두 셰프

세계적인 출판사 파이돈이 출간한 영문 한식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 저자 최정윤(왼쪽) 셰프와 박정현 셰프. 김상선 기자

세계적인 출판사 파이돈이 출간한 영문 한식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 저자 최정윤(왼쪽) 셰프와 박정현 셰프. 김상선 기자

“기적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성과.”(『파친코』 작가 이민진) “한국 요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필수 도구”(프랑스 요리 거장 에릭 리퍼트) “한국 가정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왔는지에 대해 잘 연구된 연대기. 호기심 많은 미식가와 인류학자가 반드시 책장에 두고 싶어 할 책.”(미국 미식 잡지 본 아페티)

지난 10월 4일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이 출간한 영문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에 쏟아진 찬사들이다. 496쪽 안에 350개의 가정식과 레시피를 소개한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음식마다 특징과 유래 그리고 한국인이 언제, 왜 즐겨먹는지 세세히 적어놓은 집요하고도 풍성한 내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영문 한식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

영문 한식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

3년간 이 책을 집필한 주인공은 박정현·최정윤 셰프다. 뉴욕에서 모던 한식 레스토랑 ‘아토믹스’ ‘나로’ 등을 운영하고 있는 박 셰프는 현재 전 세계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2018년 아토믹스를 오픈하고 이듬해 미쉐린 2스타를 받았다. 올해는 ‘2023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8위에 선정됐고, 미국 미식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에서 뉴욕주 최고의 셰프로 선정됐다. 조선호텔 외식사업부 입사 후 해외 유수 호텔들을 거친 최정윤 셰프는 스페인의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샘표’ 우리맛연구소에서 한식 발전과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그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의 한국&중국 부의장으로도 활약 중이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선후배로 알고 지낸 18년 지기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지금도 전 세계 셰프들과 긴밀한 두 사람은 외국인의 미식취향과 욕구를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담는 것을 책의 콘셉트로 정했다.

“파이돈이 처음 의뢰한 것은 ‘아토믹스’ 책이었는데, 그보다는 한식 요리책을 내보자고 역 제안했어요. K컬처와 더불어 한식에 대한 관심이 엄청 커지고 있는 지금이 제대로 된 한식 책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죠.”(박정현·이하 박)

책 서두에서 한식을 정의할 수 있는 특징들과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식의 역사, 서울부터 제주까지 고유한 특색을 가진 지역음식을 소개했다. 제일 눈에 띈 것은 한식 기본 재료(흰쌀·현미·배추·깻잎·쑥갓·숙주나물·콩나물·김·다시마·낙지·조청·참깨 등) 70여 가지를 백과사전처럼 면밀히 나눠서 쉽게 설명한 점이다. 파 하나도 대파·실파·쪽파로 구분했다.

“음식은 한 민족의 언어니까 레시피만 단순히 전달하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그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죠.”(최정윤·이하 최)

350개의 한식을 정리한 목차에서도 이들의 진심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크게 3가지로 구성한 챕터의 제목은 ‘발효(Fermentation)’ ‘밥(Bap)’ ‘반찬(Banchan)’이다. 한식의 대표적인 특징인 발효음식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해가 되지만, 수백 종의 음식을 궁중요리·사찰요리 등으로 나누지 않고 밥과 반찬으로만 나눴다는 점이 특별했다. 반찬도 나물·무침·찌개·전골·찜·구이 등으로 세분화해서 매일 밥상에 오르는 음식 위주로 소개했다.

“한식 문화의 본질 중 하나인 ‘밥과 반찬’을 제대로 소개하는 게 이 책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흔한 영어 메뉴판처럼 반찬을 사이드디시(side-dish·곁들임 요리)로 쓰지 않고,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dishes to accompany rice)’로 표기한 이유기도 하죠. 한식이라면 불고기·비빔밥 밖에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한식 밥상은 이렇게 식재료도 다채롭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젓갈만 빼면 한식은 다 채식요리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싶었고. 육식·채식을 떠나 매끼 이렇게 건강하고 균형감 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걸 강조한 거죠.”(최)

예를 들어 ‘신선로’는 유명한 전통음식이지만 평소 자주 먹는 일상식이 아니여서 제외시켰다. 대신 양념치킨·떡볶이·진미채무침 등을 포함시켰다. 단순명료하게 한식을 ‘한국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정의한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할머니·엄마·나·조카까지 4대가 있는데 90년 전 태어난 할머니도 Z세대 조카도 양념치킨·로제파스타를 좋아해요. 엄마가 어릴 때 즐겨 먹었던 카레라이스·떡볶이도 좋아하고. 이게 우리의 현재 일상식이잖아요. 이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녹이려 했죠.”(최)

음식과 식재료의 명칭을 한글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도 눈에 띈다. 미나리(Minari), 쑥(Ssuk) 이런 식이다. 이 방법은 실제 아토믹스 메뉴판에 적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처음엔 낯설지만 궁금증은 관심의 시작이고, 친밀감은 일상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지 2~3주밖에 안됐는데 ‘직접 만들어봤다’며 SNS에 사진과 함께 우리를 태그 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어제 열린 한식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미첼 데이비스 셰프도 책 속 ‘무전’을 만들어봤다며 자랑하더군요.(웃음) 미국에선 집에서 이탈리아 파스타를 해먹는 게 우리가 라면 끓여먹는 것 만큼 자연스러워요. 스시·롤 같은 일식도 이젠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마트에서 쉽게 구입해 먹는 일상식이 됐죠. 그들이 어릴 때부터 주변에 존재했던 음식이니까요. 한식이 이렇게 되려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요즘 H마트에서 한식 재료를 사는 게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여서 한식 요리법을 찾는 젊은 친구들도 점차 늘 것 같아요.”(박)

책의 뒷부분을 한식 장인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한 점도 돋보인다.

“파이돈에서는 이 책과 같은 시리즈를 국가별로 출판하는데 그 중 인물 사진이 들어간 책은 우리가 처음이에요. 책을 쓴 셰프 사진조차 없이 음식 사진만 넣는 게 원칙인데 파이돈도 음식에 인생을 건 장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숙인 거죠.”(최)

“이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진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한식의 깊이와 본질, 고유한 품격이었어요. 책 한 권을 따로 내도 좋을 만큼 엄청난 공력을 가진 분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와 노하우를 알려주니 파이돈으로선 땡큐였겠죠.(웃음)”(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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