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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선 망치, 한쪽선 광낸다" 英언론도 꼬집은 홍범도 논란

중앙일보

입력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 흉상. 육군사관학교 및 국방부 청사 앞 흉상도 이전이 검토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앞 홍범도 장군 흉상. 육군사관학교 및 국방부 청사 앞 흉상도 이전이 검토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 한창인 홍범도 장군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까지 등장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아시아 소식을 다루는 '반얀(Banyan, '지혜'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코너에서 이 내용을 다루며 "한국 정치가 역사를 두고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철거 찬반 논쟁이 한창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두고 한쪽에선 먼지를 털며 광을 내고, 다른 한쪽에선 망치로 부수려는 삽화도 곁들였다. 홍범도 장군을 두고선 "20세기의 게릴라 리더(a 20th-century guerrilla leader)"라고 정의했다. 정치적 편향성을 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표현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다룬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기사. [copyright: the Economist]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다룬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기사. [copyright: the Economist]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건을 미국과 견주어 설명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느냐 마느냐의 논란과, 미국 남북전쟁의 패배 장군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를 연결지으면서다.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 당시, 연방 정부에 반대하고 노예제 유지에 찬성한 남부 군을 대표하는 지도자였다. 패배한 뒤 깨끗이 승복을 하고 통합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은 미국 내 지명에 다수 남아있다.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의 동상 역시 그를 기리는 대표적 기념물이다.

2021년 뜨거웠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 현장. AFP=연합뉴스

2021년 뜨거웠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 현장. AFP=연합뉴스

그러나 2020년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면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시위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샬러츠빌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어 그가 이끌었던 남부연합군의 깃발 및 각종 징표를 제거하는 캠페인이 뒤따랐다. 여기에 반발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맞불을 놓으면서 동상은 때아닌 철거 논란을 불렀다. 동상은 결국 철거됐다.

버지니아주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2021년 7월 논란 끝 철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버지니아주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2021년 7월 논란 끝 철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범도 장군과 관련한 논란과는 결이 분명 다르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한국 정치 역학엔 차이점이 있음을 짚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에선 좌우 진영의 분열은 경제 및 사회 정책을 놓고 이뤄지지만, 한국의 경우는 근대사를 두고 분열한다"며 "양당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친시장적 정책을 쓰며 재벌 개혁에는 적극적이지 않고, 성소수자 인정엔 반대한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우파라고 인식되는 국민의힘은 공산주의 척결, 좌파라고 칭해지는 민주당은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것을 동력으로 삼는다"며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태도 및 외교 정책의 괴리가 생기고 한국의 근대사를 두고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을 두고 전체주의라고 비판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을 두고 독재정권이라 비판한다"며 "서구식의 좌우 또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한국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과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의 결은 다르지만, 그래도 결국 핵심은 "악성 파벌 정치"의 폐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적 행동처럼, 한국의 두 정파 사이에 있는 건 감정적 폭발뿐이며, 대부분의 현안 이슈에 있어선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남는 건 시니컬하게 과장된 반목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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